왕릉이 한왕(漢王)의 가솔들과 함께 이미 양하를 벗어났다는 말을 듣자 항왕은 몹시 성이 났다. 길길이 뛰며 사마용저를 꾸짖고, 날이 밝는 대로 종리매의 대군을 풀어 그들을 뒤쫓게 하려 했다. 하지만 막상 뒤쫓으려니 모두 어디로 갔는지 막막해 머뭇거리며 알아보는 사이에 며칠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왕(韓王) 성(成)을 대신해 한(韓)나라 땅을 지키고 있는 정창(鄭昌)이 사람을 보내 알렸다.
“왕릉이 무리 1만여명과 함께 한왕(漢王)의 가솔을 보호하여 함곡관 쪽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세력이 작지 않은 데다 밤중에 가만히 길을 돌아가는 바람에 지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였습니다. 하오나 신(臣)은 그 일을 용서할 수 없어 태만의 죄를 물어 그곳 수장(戍將)을 목 베고 이렇게 급히 대왕께 알립니다.”
그 사이 한나라 땅까지 지나쳤다면 이미 함곡관 동쪽에서 따라잡기는 틀린 일이었다. 이에 항왕은 분을 가라앉히고 다음 일에 대비했다.
“한왕 성은 포악한 진나라를 쳐 없앨 때도 세운 공이 없는 데다, 이제는 봉토까지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그냥 둘 수 없다. 왕위를 폐하고 열후(列侯)로 삼는다. 대신 전(前) 오령(吳令) 정창을 한왕(韓王)으로 봉하니, 정창은 굳게 무관(武關)을 지켜 한왕(漢王) 유방으로 하여금 함부로 중원을 넘보지 못하게 하라!”
엉뚱하게도 왕릉을 지나 보낸 죄를 팽성에 끌려와 있는 한왕 성에게 물으며, 그렇게 정창을 격려하여 한왕 유방이 동쪽으로 나오는 것을 막게 했다.
그때 장량은 정창과 함께 한나라의 도읍인 양적(陽翟)에 있었다. 팽성으로 간 사자가 그 같은 패왕의 명을 받아오자 깜짝 놀랐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정창을 돕는 척하고 있는 것은 한왕 성이 항왕에게서 받고 있는 의심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큰일이다. 한왕 성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구나.’
그렇게 속으로 탄식하면서 급하게 항왕에게 글을 올렸다. 조금이라도 항왕의 의심을 덜어 팽성에 잡혀있는 한왕 성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한왕 유방이 이번에 관중으로 나온 것은 전날 회왕께서 하신 약조 때문입니다. 마땅히 관중왕(關中王)이 되어야 하는데, 대왕께서 그 땅을 거두시어 얻게 될 직위를 잃게 되자 한왕 스스로 관중을 얻고자 한 것뿐입니다. 만약 처음 약조대로 관중만 얻는다면 한왕은 더 동쪽으로 나올 뜻이 없는 걸로 들었습니다.’
먼저 그렇게 글을 올려 항왕을 마음 놓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시 동북(東北) 쪽의 모반을 일러바치는 글을 올려 항왕의 눈길을 그리로 돌리려 했다.
‘제(齊)나라와 조(趙)나라가 힘을 합쳐 초나라를 치려 하고 있습니다. 전영(田榮)은 이제 제나라를 온전히 손아귀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진여(陳餘)를 앞세워 조나라까지 엿보고 있습니다. 만약 진여가 전영의 힘을 빌려 조왕(趙王)을 다시 세우고 전영과 손을 잡는다면 서초(西楚)와 대왕께 큰 우환거리가 될 것이오니 부디 유념하시옵소서.’
하지만 그와 같은 장량의 글이 올라오자 항우는 벌컥 화부터 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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