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교육 벗어날까]<上>사교육 영향은

  • 입력 2004년 8월 26일 18시 44분


교육인적자원부는 2008학년도 이후 이번 대입제도 변경 배경을 설명하면서 통합교과적 출제로 고등정신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수능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과외 수요와 점수 따기 경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들었다.

이 때문에 수능을 9등급으로 단순화하고 그 대신 학교생활기록부 활용비중을 높이도록 하면 수능에 매달리는 현상이 줄고 자연스럽게 학교 수업에 충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번 교육부의 개선방안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역대 교육대책이 모두 같은 배경에서 나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로 학부모나 일선 학교 및 학원 등 사교육 시장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입시제도 개선방안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수능과 학생부 등급을 잘 받아야 하고 여기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 대학별 고사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세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중2 아들을 둔 김모씨(40·서울 강남구 도곡동)는 “수능 문제가 쉬우냐, 어려우냐를 떠나 상위 4% 안에 들어 1등급을 받아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어떻게 과외를 안 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생부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학부모들은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과목별로라도 내신 대비 과외를 한다는 설명이다.

강남구 대치동 등 학원가에서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비 강좌를 열고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기출문제와 출제예상문제까지 만들어 가르치는 곳도 있다. 심지어 수행평가 과제별로 30만∼40만원씩 하는 소규모 그룹과외를 하기도 한다.

학생부 성적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좋은 내신을 받기 위해 학교 진도보다 앞질러 배우는 선행학습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한 학부모는 “한국사회 자체가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어떤 제도를 내놓아도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영일 중앙학원 원장은 “내신을 올리기 위한 선행학습 강화가 불 보듯 뻔하고 교과서 중심으로 문제가 출제된다면 족집게 강의 등이 성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대학들이 수능과 학생부를 믿지 못하게 되면 대학 자체에서 실시하는 면접구술, 논술고사의 변별력을 높일 것이기 때문에 학생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고려대 한양대 중앙대 등 일부 대학들은 학업적성검사라는 명목으로 교과적 지식을 묻거나 영어실력을 평가하고 있다.

서울 세화여고 박범수 교사(42)는 “상위 1% 안에 드는 학생들도 의대 한의대 등 원하는 학과에 합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또다시 무한경쟁을 하는 추세”라며 “각 대학이 심층면접을 너무 어렵게 내면 이와 관련된 과외 수요를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전문가들은 앞으로 사교육 시장은 선행학습, 수능, 심층면접 등 전형 특성에 맞게 세분화, 전문화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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