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여년 전부터 동해는 ‘동해’였다
세계 지리학계는 ‘역사성과 대표성’(history and representation)을 지명 결정의 근거로 삼는다. 즉,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러온 이름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해는 ‘동해’가 마땅하다.
중국인들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줄곧 한반도 동쪽 바다를 동해로 일컬어 왔다. 중국의 사서(史書)에 일본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4년경. 러시아에서도 19세기 중엽까지 동해를 ‘동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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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까지 제작된 일본지도 역시 동해를 ‘조선해’ ‘고려해’ ‘타르타르해’ 등으로 표기했다.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는 하나도 없다. 1883년에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통상조약(일본인민통상장정병해관세목·日本人民通商章程竝海關稅目)에도 동해는 조선해로 표기됐다.
● 19세기까지 서양에서도 ‘조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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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동해가 알려진 것은 16세기 초 동양을 탐험한 서양인들이 제작한 지도를 통해서다.
이후 19세기까지 서양인들은 동해를 ‘Sea of Korea’, ‘Sea of Joseon’, ‘Eastern Sea’, ‘Oriental Sea’, ‘Sea of China’, ‘Sea of Japan’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했다.
일본해 표기는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제작한 ‘곤여만국전도’에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19세기 초반까지는 ‘Sea of Korea’ 또는 ‘Sea of Joseon’라는 표기가 가장 많이 쓰였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한국해와 일본해 표기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쓰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일본해 표기가 급증해 20세기 초부터는 그것이 더 많이 쓰이게 됐다. 일본 지도에 일본해 표기가 정착한 것도 그 무렵이다. 결국 일제강점기인 1929년 동해라는 명칭은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 日, 1929년 ‘일본해’로 세계에 알려
1921년 모나코에 설립된 국제수로기구(IHO·당시 이름은 국제수로국 IHB)는 1929년 ‘바다와 해양의 경계’라는 책을 냈다. 나라마다 제각각 다르게 부르는 해역의 이름을 한 가지 명칭으로 통일하자는 취지였다. 이 책에 동해의 이름은 일본해로 표기됐다.
한국은 1957년에야 비로소 이 기구에 가입했다. 그로부터 45년 뒤인 2002년 IHO가 이 책의 4판을 내기로 했을 때 정정기회가 찾아왔으나 일본의 총력로비로 실패했다. 한일 간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자 유엔과 IHO는 관련 당사국 간의 원만한 합의를 권고했다.
2004년 4월 제22차 유엔지명전문가회의(UNGEGN)는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해 양자 및 다자간 해결책 마련을 권고한다’는 문구를 회의 보고서에 삽입했다. ‘해결책 마련 권고’가 명문화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 협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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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표기 문제에 있어 관련 당사국은 사실상 한국과 일본 두 나라다. 러시아와 북한도 동해 연안국이지만, 러시아는 한일 간 합의에 따르겠다는 입장이고 ‘조선 동해’ 표기를 주장해온 북한은 2004년 2월 한국과 함께 ‘동해’로 카드를 단일화했다.
일본 측은 동해 표기에 관한 분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일본해 표기는 현재 대다수 세계지도에 사용되고 있어 이름을 바꾼다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며 협의 자체를 거부한다.
이에 한국 측은 “19세기 중반까지는 한국해와 조선해 표기가 일본해 표기보다 더 많이 쓰였기 때문에 그 후 100여 년 동안의 상황만을 근거로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명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 간단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倂記
IHO와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는 1974년과 1977년 각각 결의를 채택해 “지명과 관련해 국제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선 당사국 간의 합의노력이 전제돼야 하며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엔 서로 다른 명칭을 병기(倂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북해(North Sea)가 그 사례. 독일 영국 덴마크는 16∼17세기에 북해를 각각 ‘독일해’ ‘영국해’ ‘덴마크해’로 서로 다르게 표기했다. 그러나 이후 북해가 유럽대륙의 북쪽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명칭을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현재로서는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가 동해 표기문제의 간단하고도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와의 2차례 실무회담에서도 종전의 ‘일본해 단독표기’ 주장만 되풀이했다.
특별취재팀
▼Korea냐 Corea냐▼
최근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의 축구응원단 ‘붉은 악마’는 ‘Corea’라고 쓰인 깃발을 흔들고 머리띠를 둘렀다. 우리 국호의 영문 표기를 ‘Korea’와 ‘Corea’ 가운데 어느 것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난해 3월과 8월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남북공동학술토론회가 열렸다. 국회의원 22명은 지난해 8월 ‘대한민국 국호 영문 표기 변경 촉구결의안’을 국회에 내기도 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면서 일본의 영문 국호 ‘Japan’보다 알파벳 순서에서 앞선다는 이유로 조선의 영문 국호 ‘Corea’를 멋대로 ‘Korea’로 바꿨다는 게 국호 영문 표기 변경론자들의 주장.
실제로 일본은 조선과 수교한 1876년부터 조선을 병합한 1910년까지 조선과 맺은 22개 조약 가운데 20개 조약의 영문 번역본에 조선을 ‘Corea’라고 표기했다. 맨 마지막에 맺은 기유각서(1909년)와 한일병합조약(1910년) 두 곳에서만 ‘Korea’로 썼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상태(李相泰) 사료조사실장은 “일본이 1908년 런던 올림픽 때부터 선수단 입장 순서가 영문 국호의 알파벳 순서로 정해진 점을 고려해 조선의 영문 국호를 바꾼 것 같다”고 분석한다.
외국 고지도에도 ‘Corea’ 표기가 압도적이었다. 이 실장에 따르면 지난해 212종의 외국 고지도를 조사한 결과 ‘Corea’, ‘Coree’, ‘Corey’ 등 ‘C’ 표기가 181종, ‘Korea’, ‘Kaoli’ 등 ‘K’ 표기가 29종, 혼용이 2종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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