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여·친·소’와 종로 세종로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14분


전지현을 ‘아시아의 연인’으로 만든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자매품’이니 ‘2시간짜리 간접광고’니 하는 비판도 많았지만 홍콩, 대만, 중국 본토 등에서 빅 히트를 기록했고, 국내에서는 23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경진(전지현)이 죽은 연인 명우(장혁)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명우가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다시 나타날 거라고 믿는 경진 앞에 정말로 명우가 나타난다.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에 걸린 경진의 차 앞으로 명우가 지나가는 것.

종로구 종로1가 교보빌딩∼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사이의 횡단보도를 걷는 명우를 본 경진은 차에서 내려 명우를 쫓아간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는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나라의 중심 거리’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인지 ‘세종로 사거리’라는 공식 명칭보다 ‘광화문 사거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세종로 사거리 옆 일민미술관∼광화문우체국∼서울센트럴빌딩 길에서 경진(전지현)이 죽은 연인 명우(장혁)를 발견하고 황급히 쫓아가고 있다. -권주훈기자

경진을 피해 일민미술관에서 광화문우체국을 거쳐 100여m를 도망간 명우는 서울센트럴빌딩 앞에서 경진에게 붙잡힌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죽은 척을 할 수 있느냐”며 우는 경진에게 명우는 “명우는 죽었어. 인정해야 돼”라고 소리치곤 77번 시내버스(대흥교통)를 타고 떠난다.

사실 이 장면은 경진이 혼수상태에서 꾼 꿈이다. 명우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순간 경진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버스 번호 77은 49라는 숫자를 암시하고 있다(7×7=49). 77번 시내버스는 마장역∼여의도를 운행하던 노선. 실제론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지 않았으며, 지금은 버스체계 개편으로 없어졌다.

경진이 명우를 발견하는 일민미술관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131호. 1926년 동아일보 사옥으로 지어졌다. 신문사 사옥에서 일민미술관으로 바뀐 것은 1996년부터. 80년 가까이 된 건물이지만 리노베이션을 통해 건물 한쪽에 미술관 내부가 보이도록 유리 아트리움을 만들었다. 오래된 타일과 최신식 유리 아트리움이 묘하게 어울려 독특하고 아름답다.

올 2월 영화 촬영 때 스태프는 일민미술관 앞에 은행잎 수십 포대를 뿌렸다. 당시 전지현을 보고 행인들이 몰려들고 차들이 멈춰서는 바람에 NG가 많이 났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가장 유서 깊은 문화재는 세종로 바로 그 자체다. 세종로는 14세기 말 정도전이 새 시대에 대한 꿈을 담아 설계한 주작대로. 북악산의 정기가 경복궁 근정전을 거쳐 세종로를 따라 관악산으로 뻗치도록 만든 국가 상징 가로였다.

하지만 현재의 세종로는 정도전이 설계한 주작대로에서 방향이 약간 어긋나 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세종로의 방향을 관악산이 아닌 남산을 향하도록 틀어 버린 것. 당시 남산에는 일제의 신사(神社)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있었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세종로는 한국인에게 ‘나라의 중심’이다. 월드컵축구 응원도, 촛불시위도 테헤란로가 아닌 이 거리에서 열렸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중앙분리대 은행나무와 이순신장군 동상을 인도로 옮겨 보도 폭을 넓히거나, 아예 도로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만들어 세종로를 보행자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이 바로 세종로 사거리 아래에 있다.

(도움말=서울영상위원회·www.seoulfc.or.kr)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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