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유정 조동호 선생

  • 입력 2004년 9월 6일 18시 42분


코멘트
유정 조동호(榴亭 趙東祜·1892∼1954) 선생은 ‘좌파 항일(抗日)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다. 그는 현재 국가보훈처의 ‘관리번호 6503’으로 독립유공자 결정이 보류되어 있다. 주된 이유는 ‘광복 이후 사회주의 활동의 평가문제’라고 한다. 광복 후 좌파 활동이 걸림돌인 셈이다. 이는 ‘좌파 독립운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최근 논란의 핵심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금 우리 체제 속에서 과거 독립운동 시기 선열들이 가졌던 이념과 사상이 어떤 평가를 받든 간에 역사는 역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史實)과 평가는 또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일제(日帝)강점-분단-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현대사에서 좌파의 항일 독립운동만을 따로 떼어내 평가하고 포상하는 것은 자칫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 ‘좌파 항일운동가’의 대다수는 광복 후 북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동아일보에 실린 ‘항일 기사’▼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병합된 1910년. 19세의 유정은 7세 연상의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1885∼1947)과 조우한다. 유정의 일생을 결정짓는 운명적 만남이었다. 1914년 12월 몽양과 유정은 중국 난징(南京)으로 가 진룽(金陵)대학에서 3년간 수학한다. 1918년 두 사람은 상하이에서 장덕수(張德秀) 이광수(李光洙) 등과 신한청년당을 조직한다. ‘조선 독립을 도모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청년학생을 교양하고 그 당원을 독립운동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이듬해인 1919년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이동녕(李東寧), 이시영(李始榮), 신채호(申采浩) 등 29인의 임시의정원이 구성됐는데 몽양과 유정도 그 일원이었다. 유정은 그해 안창호(安昌浩), 이광수 등과 함께 상하이판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1923년 귀국한 유정은 이듬해 1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홍명희(洪命憙), 정인보(鄭寅普) 등과 논설반(論說班)에 있다가 중국 펑톈(奉天·지금의 선양) 특파원으로 파견돼 ‘전지행(戰地行)’이라는 종군기를 연재한다. 유정은 1924년 11월 30일자에서 쑨원(孫文)의 베이징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기사 말미에 “아∼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등 여러 선생들은 어느 때에나 그 모습을 한성에 나타낼까”라고 쓰고 있다. 1925년 1월 28일자에서는 “중국 일도 중국 일이거니와 우리 임시정부에서도 그동안 일신한 변동이 있어서…”라며 임정 소식을 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24년 10월 23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사장 김성수(金性洙), 부사장 장덕수, 편집국장 홍명희 체제가 되는데 이들이 유정의 ‘항일 기사’를 그대로 실은 것도 그렇지만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흥미롭다.

이때까지 민족계열의 항일운동에 헌신하던 유정은 1925년 4월 조선공산당 창립에 가담하며 좌파 사회주의계열로 변신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공산당은 ‘일본제국주의 통치의 완전한 타도,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첫째 목표로 삼았다. 훗날 김일성은 이때의 조선공산당에 대해 “창건 후 현실에 부합되는 지도사상이 없고 대열이 통일되지 못하고…” 운운하며 폄훼했다.(김일성저작집 45권 132∼133쪽)

▼비극적으로 마감한 일생▼

조선공산당 상하이지부에서 활동하던 유정은 1928년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4년간 옥고를 치른다. 출옥한 뒤 몽양과 함께 ‘조선중앙일보’를 운영하던 유정은 1944년 몽양이 주도한 조선건국동맹을 거쳐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제1차 조직)을 맡았다.

박헌영(朴憲永)측에 건준 선전부장 자리를 물려준 이후,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된 유정의 활동은 사실상 종료된다. 1949년 12월 28일자 ‘한성일보’는 몽양이 이끌던 근로인민당의 간부들이 ‘북한괴뢰집단’을 비난하고 전향성명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는데 유정의 이름이 중앙위원으로 올라 있다. 그는 6·25전쟁 중 서울 신당동에서 객사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영혼이나마 안식(安息)토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실장 youngj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