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 이후 처음 실시되는 11월 2일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인들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테러가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세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운명이 테러와의 전쟁 참여 여부에 따라 엇갈린 것도 9·11 테러 이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작한 이라크전을 계기로 미합중국(USA·United States of America)이 아니라 미분열국(DSA·Divid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국론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대선과 테러 변수=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외교정책 같은 대외적인 이슈는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정책, 후보의 자질, 문화적 이슈보다 이라크전을 비롯한 대(對)테러 정책,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할 최고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이 최고의 기준이다.
테러는 마치 블랙홀처럼 다른 선거 이슈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이번 선거는 9·11테러 이후 3년 동안 부시 대통령이 수행해 온 이라크전을 비롯한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 국민의 심판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선을 노리는 부시 대통령이나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모두 자신이 테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최고사령관으로서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의 핵심 명분으로 삼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와의 연계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3월 개전 이후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은 1000명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현재까지 케리 후보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후보라는 여론의 평가를 받고 있고, 지지도에서 앞서고 있다. 테러 변수의 위력이다.
케리 후보도 베트남전 참전 동지들과 전쟁영웅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해 전시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이미지 극대화를 시도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선거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부시 대통령과 차별화가 쉽지 않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상원의원 가운데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케리 후보가 대테러 정책에서 부시 대통령과는 다른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칼럼니스트 월터 샤피로는 “9·11테러로 미국 정치의 주류에서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구분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말했다.
불과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마지막 최대 변수가 될지 모른다는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prise·10월의 충격)도 테러와 관련된 가설이다.
9·11테러를 주도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검거되거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하면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정보기관과 국가안보 관련 부처들은 테러범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본토에 대한 공격을 계획 중인 것으로 보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테러와 지도자의 운명=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내외에서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 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해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이라크전을 적극 지지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지율 하락으로 내년 총선 이후의 집권 유지 가능성마저 불투명해졌다. 내달 총선을 치르는 호주에서도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적극 지지했던 존 하워드 총리에 대한 반대 여론이 심각하다.
역시 이라크전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했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전 스페인 총리는 3월 총선 사흘 전에 발생한 마드리드 열차 폭파 테러의 여파로 정권을 내줬다.
명분이 약한 이라크전에 대한 반전 여론이 각국 지도자들의 부침(浮沈)의 주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테러 조직은 정치적 영향까지 고려하면서 새로운 전술을 짜고 있다. 그 궁극적 목표는 미국의 고립이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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