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한국核’ 일본의 호들갑 속내는…

  • 입력 2004년 9월 10일 18시 14분


한국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 사실이 알려진 9일 미국과 일본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실험은 적절치 못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미량의 핵 물질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일본 관방장관)

“한국이 실험 사실을 발표한 것은 잘한 것이다. 북한도 보고 배우기 바란다.”(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

일본 정부는 ‘한국 핵문제’를 러시아 인질극이나 이라크 사태에 못지않은 큰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각료들의 기자회견장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관방장관, 외상, 방위청 장관 등이 나서 “6자회담에 미칠 영향이 걱정”이라며 IAEA에 철저한 사찰을 촉구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한국은 사실관계를 밝히고 IAEA와 잘 협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핵 관련 정보가 가장 풍부한 미국이 한국 정부의 자진 공개를 높이 평가하고, 브리핑의 단어 선택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신중히 대응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본 언론들 역시 ‘IAEA 사찰이 소홀했을 수도’ ‘핵개발 본심 어디까지?’ 등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북한 핵문제에 신경이 쓰이는 판에 한국의 ‘핵실험’ 소식까지 전해졌으니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원폭 피해를 본 탓에 핵에 대한 공포도 뿌리 깊다.

하지만 한미일 3국은 북핵을 포함한 동아시아 안전보장 문제에서 공동보조를 취해 온 ‘동맹국’이다. 한국 정부는 두 차례의 실험 사실을 공개하기에 앞서 일본측에 사전 브리핑까지 했다.

일본은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까지 갖고 있다. 핵 기술 수준도 높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 개발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의 태도가 ‘핵 무장론’을 주장하는 극우세력의 주장과 맥이 닿는 건 아닌지 우려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과학자들의 실험에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과민반응은 동맹국에 대한 ‘실례(失禮)’를 넘어 동맹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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