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테러 이후 저질렀던 잘못과 고집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자신들이 테러리스트 또는 범죄자들과 상대하고 있다고 고집스레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상대하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헌신과 엄격한 종교에 뿌리를 둔 테러리즘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와 마찬가지로 체첸에서도 민족주의와 급진적 종교가 맞서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민족주의는 18세기 이후 체첸을 비롯한 카프카스를 지탱해 온 생명력이었다. 체첸은 1818년 시작된 차르(러시아 황제)의 침략에 맞서 싸웠으며 1917년부터는 볼셰비키와 싸웠다. 독일이 소련을 침략했던 1942년 체첸은 볼셰비키에 반대해 봉기했다.
스탈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체첸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추방했다. 1991년 소련 정권이 붕괴되자 체첸인들은 또 다시 독립을 요구했으며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무자비한 진압군을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전통을 물려받았다. 그 역시 자신이 체첸을 진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을 재개했다.
2001년에는 ‘체첸인들은 테러리스트이며 그들은 또한 미국의 적’이라는 논리로 부시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 냈다.
이제 체첸의 테러리즘이 푸틴을 괴롭히고 있다.
부시는 이라크를 침략함으로써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이라크 민족주의 부활’이라는 선물을 안겨 줬다. 민족주의가 없는 한 이슬람 원리주의는 힘을 쓰지 못한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젊고 부유한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물질주의, 비도덕성, 방탕, 힘의 남용에 대해 청교도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당연히 서방의 유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서방의 ‘마오쩌둥(毛澤東)주의’ 추종자들 중에는 자본주의의 도덕적 타락에 의구심을 품은 목사의 자녀들과 전직 신학생들이 포함돼 있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을 때 몰려들었던 젊은 이슬람교도들은 이후 다른 곳에서 부패와 이단에 대항하는 싸움을 계속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들을 따르지 않았다. 유럽의 ‘마오쩌둥주의’처럼 젊은 급진주의자들은 일반 주민이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판단이었다.
보스니아의 이슬람교도들은 전후 사라예보의 자유와 비종교적 가치를 되살리려는 노력에 집중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도 미국이 탈레반을 몰아내고 엄격한 이슬람 교리에서 해방되는 것을 반길 정도였다.
주민들이 따르지 않자 이슬람권과 유럽 급진주의는 다음 단계로 테러를 선택했다. 테러행위는 이슬람교도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적들에게 이슬람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공포에 떨게 만든다는 논리다. 그 결과가 바로 알 카에다의 등장이다.
카프카스에서나 중동에서나 원리주의와 민족주의는 병행되어 온 양대 축이다.
건국 이전에 영국 및 팔레스타인에 맞섰던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전쟁은 테러를 활용한 민족주의였다. 그 이후에는 팔레스타인의 테러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전쟁의 한 부분이 됐다.
워싱턴이 어떻게 생각하든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뒤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민족주의와 테러리즘이 미국과 전쟁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라크 무장 세력의 저항이 일어난 동기도 바로 민족주의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언젠가는 이라크에서 쫓겨날 것이다.
민족주의는 전체주의에 저항하면서 이를 극복한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정체성을 추가로 확인하기 위해 종교적 원리주의와 쉽게 결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약자들의 무기인 테러를 사용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설명한다. 분노에 찬 민족주의나 국가권력주의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힘이 9·11테러 이후의 미국 정책을 주도해 왔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윌리엄 파프(미국)▼
○ 미국 노트르담대 졸업
○ 언론인
○ ‘국가의 분노’ 등 국제문제 관련 8권 저술
○ 미 허드슨 연구소 유럽분소 부국장
○ 인터내셔널 해럴드트리뷴 칼럼니스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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