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씨비스킷’에서 말 조련사 톰 스미스가》
말이건 사람이건 최선을 다해 한계를 극복하는 ‘인생역전’ 스토리는 늘 감동적이다. 영화 ‘씨비스킷’(DVD·브에나비스타)은 193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신화가 됐던 경주마(馬)의 이야기다. 씨비스킷은 체구가 또래 말들의 절반에 불과한 데다 다리가 굽고 성질까지 사나워 구제불능으로 낙인찍힌 말이었다. 하지만 그를 알아봐 준 조련사, 기수를 만나 각종 경마대회를 휩쓸고 대공황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되찾아줬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은 일본에도 실제로 있다. 일본의 하루우라라는 경주마치곤 몸집이 작고 신경질적인데, 그의 경기가 불황으로 많은 것을 잃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 씨비스킷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씨비스킷은 늘 이기는 말이지만, 하루우라라는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둘 다 볼품없게 생겼지만, 씨비스킷은 이래봬도 21전 20승을 이룬 명마의 후손이다. 기수 레드 역시 대공황이 닥치기 전엔 저녁식사 자리에서 롱펠로의 시를 암송하고 아버지에게 말을 상으로 받던 중상층의 아들이었다. 좋은 혈통에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특별한 말과 기수는 단지 외형 때문에 천대받다가 기회를 얻자 훨훨 날듯 재능을 발휘한다.
반면 하루우라라에겐 어떤 특별한 징표도 없다. 명마의 후손도 아닌 데다 1998년 데뷔한 이래 올여름까지 112연패를 기록하며 줄기차게 지고 있다. 그래도 성실하게 전력질주한다는 것이 하루우라라의 특징이다. 책 ‘달려라! 하루우라라’에서 한 말기암 환자는 “어쨌든 열심히 달려주기만 하면 그 모습이 격려가 되어 나도 힘을 낼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씨비스킷은 ‘역경을 딛고 승리했다’는 것, 일본의 하루우라라는 ‘그래도 달린다’는 것이 희망의 이유다.
두 말의 차이를 짚다보니 두 말이 희망의 증거가 되었던 까닭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에도 하루우라라처럼 100연패에 가까운 기록을 세운 말 지피치피가 있었다고 한다. 지피치피도 유명세를 탔지만 사람과 경주를 하는 등의 이벤트로 경마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구경거리에 그쳤을 뿐이다. 줄곧 지더라도 묵묵히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는 개체의 특별함을 높이 사는 미국의 문화적 맥락에서는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다룬 책 ‘생각의 지도’에서 서양인들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며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반면, 동양인들은 자신이 특별하지 않으므로 더 향상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조건이 다를 뿐이다. 서양식 ‘자존감’이 없다한들 대수인가. 하루우라라는 잘난 게 하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제 몫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조련사 톰의 말처럼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씨비스킷과 하루우라라. 당신은 어떤 말에 더 끌리시는가.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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