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중국인 불법체류자 “불우이웃 위해” 한달월급 본보기탁

  • 입력 2004년 9월 23일 18시 24분


“한국에선 추석이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도 명절만큼은 기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한 외국인 노동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 달라”며 한 달치 월급 전액을 20일 본보에 기탁해 왔다.

주인공은 중국 랴오닝(遼寧)성 출신 A씨(50). 2000년 입국해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인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명절 때 돈 없는 설움은 겪어 봐서 안다”며 120만원을 내놓았다.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공장 한쪽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하며 번 돈이다.

“중국에 있을 때는 너무 가난해서 담배 한 갑 살 돈도 없었습니다. 아내도 가난에 못 이겨 저를 떠나고…. 명절에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을 보며 숨어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아요.”

그는 “그때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명절 때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결심했다”며 “지금도 넉넉하진 않지만 기회가 있을 때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국에 있는 가족에겐 그동안 아껴 모아 둔 돈을 보내는 것으로 이달치 송금을 대신했다.

그가 월급을 털어 남을 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국내의 한 중국어 소식지에 월급 100만원을 기탁해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대구에서 일할 때 공장장에게 맞고 도망치는 등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월급을 잃어버렸을 때 2만원씩 모아 주던 한국 사람들의 인정에 감동해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중추절(추석)에 가족이 다 모여 월병을 먹으며 달구경을 합니다. 비록 저는 가족이 보고 싶어도 갈 수 없지만 한국의 어려운 분들이 명절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의 얼굴에 넉넉한 웃음이 번졌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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