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66>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24일 18시 05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항왕은 천하를 아우른 진나라의 수십만 갑병(甲兵)을 마소 잡듯 하며 마침내 함양까지 이른 사람이외다. 힘없는 제(齊)나라의 백성들이 무슨 수로 오래 맞설 수 있겠소?”

장량과 한신 두 사람이 한꺼번에 군사를 내자고 하자 오히려 뜨악해진 한왕이 그렇게 반문했다. 한신이 바로 받았다.

“하지만 그 진나라를 먼저 뿌리째 뒤흔든 것은 진승과 오광을 따라 일어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따르는 수졸(戍卒) 몇 백 명이 있었다 하나 그들도 원래는 흙만 파고 살던 농투성이 들이었고, 나중에 합세한 수십만은 오갈 데 없던 유민(流民)들이 무리지은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이 보기에도 이번에 제나라 백성들이 모두 들고 일어난 것은 대왕을 위해 하늘이 마련한 호기(好機) 같습니다. 어서 대군을 내어 비어있는 중원을 차지하십시오.”

장량도 한신을 거들었다. 그제야 한왕도 더는 두 사람을 떠보지 않고 명을 내려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날이 풀리면서 장수들도 주먹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출병(出兵) 논의가 시작되자 두 손을 들어 환영하는 뜻을 드러냈다.

이에 한왕은 승상 소하에게 1만명의 장졸을 딸려 도읍인 역양을 지키게 하면서, 아울러 호구(戶口)를 헤아려 장정(壯丁)을 모아들이는 일과 부세(賦稅)를 거두어 군량과 물자를 대는 일을 맡게 했다. 효혜(孝惠)왕자와 왕실을 보살피는 일도 소하 몫이었다. 그리고 다시 역이기((력,역)食其), 역상 형제에게 3만 군을 남겨 관중을 지키게 한 뒤, 한왕 자신은 가려 뽑은 5만 군을 이끌고 함곡관을 나왔다. 한(漢) 2년 늦은 봄 3월 초순의 일이었다.

하남왕 신양이 한왕에게 항복을 한 데다 제(齊)나라에 발목이 잡힌 패왕은 하남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그 바람에 한왕이 대군을 이끌고 함곡관을 나와서도 한동안은 무인지경 내닫듯 했다. 한달음에 임진관(臨晉關)까지 나와 하수(河水)를 마주했다.

임진관은 하수 서편 물가에 세워진 관(關)으로, 동쪽 건너편은 옛 진(晉)나라 땅이었다. 달리 포진관(蒲津關)이라고도 하는데, 그때는 서위왕(西魏王) 위표(魏豹)의 땅을 마주보고 있었다.

“남으로 내려가 한(韓)나라 땅을 가로지른 뒤 바로 서초(西楚)의 도읍인 팽성을 치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물을 건너 동북쪽을 평정한 뒤 남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겠소?

임진관에 이른 날 한왕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바로 패왕의 도읍인 팽성을 칠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한왕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장량이 나서서 한왕의 속을 읽고 있는 듯이나 말했다.

“비록 항왕이 없다고는 하나 바로 팽성을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먼저 하수를 건너 서위왕과 은왕(殷王)의 땅부터 거둬들이는 게 좋겠습니다.”

“서위왕 위표는 전에 임제성(臨濟城)에서 그때는 진나라 장수이던 장함에게 죽은 위왕(魏王) 구(咎)의 아우로서 용맹과 지략을 겸비했다 들었소. 그가 남쪽으로는 은왕 사마앙(司馬昻)과 손잡고 동쪽으로는 항왕에게 급한 구원을 청해 맞서오면 우리가 어려운 지경에 떨어지는 일은 없겠소?”

한왕이 다시 그렇게 능청을 떨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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