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국정감사장에서 민감한 내용의 자료제출을 정부측이 불응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국가기밀’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자료제출 거부 파장=현행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4조 1항은 ‘국가기관은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 다만 군사 외교 대북관계의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장관은 자료제출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5일 이내 소명하고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측의 자료제출 거부는 나름의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만 단순히 ‘직무상 비밀’이라는 이유로는 거부가 불가능하다. 또 거부의 법적 단서가 되는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한나라당 나경원(羅卿瑗) 의원은 “증언·감정법은 군사 대북 외교에 관한 사항으로 자료 제출 거부 조건이 국한되어 있다”며 “이는 포괄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기보다는 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한정적 열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기밀 유출 논란의 당사자인 한나라당 박진(朴振) 정문헌(鄭文憲) 의원도 ‘충무계획’ ‘작계 5026’ 등의 문서에 대해 “이미 언론이나 인터넷사이트에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두 사람이 공개한 문건은 모두 2급 군사 또는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며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국가기밀은 각 급에 따라 비밀취득인가권자가 정하도록 돼 있어 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밀 분류를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1급) ‘막대한 지장을 주거나’(2급) ‘손해를 끼칠 수 있는’(3급) 등 추상적 용어로 규정하는 만큼 이에 대한 해석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외국의 사례=8일 정무위 국감에서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공정거래위가 요구자료에 대해 ‘자체 보안성 심사 결과 제출이 적절치 않다’며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히고 “공정위가 전날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기밀 자료제출 관련 언급 이후 갑자기 자료 제출에 더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경우 의원들은 미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모든 자료의 열람이 가능하지만 이를 공개했을 경우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2001년 9·11테러 한 달 뒤인 10월 9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의원들이 무책임하게 정보를 유출해 미군 병사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면서 대 의회정보브리핑을 양당 상·하원 총무와 정보위원장 등으로 제한토록 지시한 적도 있다.
그러나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자체를 완전히 차단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를 위해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사명 의식이 필요한 시점으로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가 이 총리까지 나서 사실상 야당을 겨냥해 국가기밀 관련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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