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84>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0월 19일 19시 08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성양을 떨어뜨린 패왕은 사로잡힌 전영(田榮)의 군사들과 그들을 거들어 싸운 백성들을 모조리 성밖에 끌어내어 산 채로 땅에 묻었다. 그 머릿수가 군민(軍民)을 합쳐 3만이 넘었다. 또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상 대신 약탈을 허용하니, 빼앗기지 않으려다 죽음을 당하는 백성들의 비명소리와 겁탈 당하는 부녀자의 애처로운 신음이 며칠이나 성안을 가득 메웠다.

“이만하면 과인과 서초에 맞선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이제 제왕(齊王)을 다시 세워 그에게 제나라를 맡기고 우리는 팽성으로 돌아가자!”

사흘째 되는 날 패왕은 그렇게 말하고 제왕으로 내세울 만한 인물을 찾아보게 했다. 마침 옛 제나라의 마지막 왕 전건(田建)의 아우 전가(田假)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가는 전에도 제나라 사람들이 왕으로 세운 일이 있었는데 항량이 동아(東阿)에서 구해준 덕분에 제나라로 되돌아온 전영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패왕이 전가를 제왕으로 세우고 성양을 떠나려 하자 전가가 덜덜 떨며 빌었다.

“대왕, 이대로 떠나셔서는 아니 됩니다. 대왕께서 이리 떠나시는 것은 저를 죽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천하가 안정될 때까지는 저를 팽성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제왕이 제나라에 머물지 않고 어찌 서초의 도읍으로 가겠다는 것이오? 제나라 백성들을 뽑아 군사를 기를 때까지 약간의 장졸을 남겨줄 터이니 이곳에 머물러 봉토를 지키시오.”

패왕이 그렇게 권했지만 전가는 눈물까지 보이며 간청했다.

“비록 전영은 죽었으나 지금 제나라는 전영의 잔당(殘黨)으로 덮여 있습니다. 대왕께서 떠나시면 제나라는 그날로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히고 말 것입니다.”

“전영의 잔당? 그럼 제나라 백성들이 그토록 많이 전영을 따르고 있었단 말이오?”

“그 형 전담(田담)으로부터 산동의 민심에 내린 뿌리가 결코 얕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혼자서 삼제(三齊)의 왕을 모두 죽이거나 내쫓을 수 있었겠습니까? 제발 저도 그 삼제의 왕처럼 되지 않도록 굽어 살펴주십시오.”

전가가 그렇게 애걸하고 있는데 갑자기 급한 전갈이 들어와 전가를 거들어 주었다.

“전영의 부장(部將) 하나가 동아(東阿)에서 크게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 자는 성양을 우려 빼신 대왕께서 초나라 군사를 시켜 성안 남자들은 모두 산 채로 땅에 묻고, 부녀자들은 남김없이 겁간한 뒤 부로(부虜)로 끌고 갔다고 제나라 백성들을 속였다고 합니다. 또 백성들의 재물을 모두 약탈하고 민가를 모조리 불살라 성안을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거짓말 하였으며, 성벽은 허물고 해자(垓字)는 메워 성양성이 있던 곳은 평지가 되었다고 충동질해 백성들을 저희 편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정녕 그렇게 해주기를 원한다면 그리 해주지.”

하지도 않은 일까지 덮어씌우는 데 화가 난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고 다시 소식을 가지고 온 군사에게 물었다.

“그래, 그것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

“동아에서 모은 군사가 저희 말로 3만인데, 다시 곡성(穀城)을 아울러 5만으로 키운 뒤에 성양으로 쳐들어오겠답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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