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86>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0월 21일 19시 03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게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지난 두 달을 돌이켜 보십시오. 당장도 또 어디서 악에 바친 제인(齊人)들이 들고 일어날는지…”

범증이 여전히 어둡고 무거운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그러잖아도 지쳐있던 항우는 울컥 화가 솟구쳤으나 상대가 범증이라 함부로 속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숨만 씨근거리고 있는데 군사 하나가 급히 달려와 알렸다.

“역성(歷城)에 또 반군(叛軍)이 들었다 합니다. 죽은 전영(田榮)의 종제가 이끄는 군사라고 하는데 그 기세가 자못 날카롭습니다. 전횡(田橫)의 명을 받들어 성양(城陽)으로 몰려가는 길이라 합니다.”

전횡은 전영의 아우로서 장수의 재질이 있었다. 전에 전영이 스스로 재상이 되어 전담의 아들 전불을 왕으로 세우고 제나라를 다스릴 때는 장군이 되어 형을 도왔으며, 전영이 마침내 제왕(齊王)이 되었을 때는 대장군으로 제나라의 대군을 모두 거느렸다.

“내가 전횡을 잊고 있었구나. 그래 전횡은 지금 어디에 있다고 하더냐?”

패왕이 문득 생각난 듯 그렇게 물었다. 그 군사가 알아온 대로 모두 말했다.

“성양이 떨어질 때 겨우 군사 몇 백만 데리고 멀리 달아났던 전횡은 형이 평원(平原)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자 보수설한(報수雪恨)을 맹서하며 군사를 모았습니다. 상복을 입고 검은 기를 세워 제나라 사람들을 충동질하니 금세 몇 만 군사가 그 아래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우리 군사가 가는 곳마다 항복한 자는 모두 산 채 묻고 성은 허물어 평지를 만들어버린다는 소문이 돌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지금은 그 세력이 전영이 살아있을 때에 못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역성에 있는 무리들에게 성양으로 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성양을 되찾을 작정인 듯합니다.”

그때 다시 범증이 조용히 물었다.

“역성에 있는 군사는 얼마나 된다고 하더냐?”

“저희 말로는 몇 만이라고 떠드나 인근 백성들에 따르면 5000을 크게 넘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벼린 창칼조차 없는 농투성이들이라 우리 대군이 밀고 들면 모두 놀라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달아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역성에 닫기 전에 먼저 성양으로 달려가 전횡과 합세하겠지.”

범증이 남의 말 하듯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든 패왕이 성난 기색을 감추고 물었다.

“아부(亞父),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오?”

“어서 빨리 군사를 성양으로 돌려야 합니다. 늦어지면 돌아가도 성양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고, 성안의 전가(田假)는 이미 죽은 목숨일 것입니다.”

“역성의 적도는 어찌해야 하오?”

“성양으로 가는 길목이니 응당 쳐 흩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열에 아홉 적도들은 우리가 그곳에 이르기 전에 성양으로 달아나고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급해진 패왕은 그날로 대군을 휘몰아 역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루 밤 하루 낮을 내달아 역성에 이르러 보니 범증의 말대로 반군들은 이미 그 하루 전에 떠나고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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