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94>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0월 31일 19시 09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내 근래에 그런 풍문을 듣고 걱정했더니, 그럼 그게 사실이었단 말이오? 의제(義帝)께서 돌아가신 것이 정말로 항우가 몰래 구강왕(九江王) 등에게 시켜서 한 일이오?”

한왕 유방이 짐짓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삼로(三老) 동공(董公)이 격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 한가운데서 시해하여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냈으니 하늘과 사람이 아울러 성낼 일입니다. 저희 딴에는 아무도 모르게 한다고 했으나 눈 있고 귀 있는 초나라 사람 치고 그 일을 모르는 이는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 말에 한왕은 굳이 꾸민다는 느낌 없이 한바탕 크게 소리 내어 울고 말하였다.

“의제께서 결국은 그리 되신 것이구려. 알려주셔서 고맙소. 이제 과인은 돌아가 공의 말대로 의제를 위해 발상하고 그 원수를 갚아 천하의 대의를 바로 세울 길을 찾아보겠소.”

그리고는 성안으로 돌아가기 바쁘게 장량과 한신, 진평을 불러 그 일을 말했다.

의제가 시해당할 때 장량은 겨우 항우에게서 몸을 빼내 샛길로 한왕에게 돌아오는 중이었으며, 한신은 삼진(三秦)을 평정하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둘 모두 바로 그 일을 알았다 해도 한나라를 위해 활용할 여유가 없었다. 그 뒤 의제가 시해되었다는 풍문이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겨우 삼진을 평정하고 이제 막 관외(關外)로 세력을 넓히려는 참이라, 그걸 활용해 바로 항우와 천하를 다투는 것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한왕을 통해 삼로 동공의 말을 듣고 보니, 장량과 한신뿐만 아니라 진평이나 다른 장수들에게도 해볼 만한 일로 보였다.

좌우 모두가 옳게 여기자 한왕은 그날로 의제를 위해 발상거애(發喪擧哀)하고 크게 장례를 치르게 했다. 한왕 자신도 장졸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왼 소매를 벗고[단(단)] 큰소리로 목 놓아 울어 슬픔과 충심을 아울러 드러냈다. 그리고 성복(成服)한 뒤에는 사흘 동안이나 줄곧 의제의 빈소를 지키며 애곡(哀哭)을 그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의제가 한왕을 믿어 먼저 서쪽으로 가게 한 것이 한왕에게 누구보다 먼저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낼 기회를 준 셈이었다. 나중에 항우가 제후들에게 천하를 나누어줄 때도 관중을 먼저 차지한 자를 관중왕을 삼는다는 의제의 약속이 있어, 한왕에게 파촉(巴蜀) 한중(漢中)이나마 돌아올 수 있었다. 따라서 한왕의 슬픔과 눈물이 반드시 겉꾸밈일 까닭은 없었다.

늦었지만 엄숙하면서도 성대한 의제의 장례와 함께 한왕은 또 천하의 제후들에게도 사자를 보내 알렸다.

<의제는 천하가 함께 천자로 올려 세우고 만민이 북면(北面)하여 섬기던 분이셨다. 그런데 이제 항우가 의제를 강남으로 쫓아냈다가 시해하였으니, 실로 대역부도(大逆不道)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과인이 친히 의제를 위해 발상(發喪)하니 모든 제후들도 흰 상복을 입어 의제를 애도할 일이다. 또 관중(關中)의 모든 병마를 일으키고 하동(河東) 하남(河南) 하내(河內) 세 군의 장사를 불러 모아 장강(長江)과 한수(漢水)를 따라 남으려 내려가려 하니, 모든 제후와 왕들은 과인과 함께 하기를 바라노라. 과인과 함께 서초(西楚)로 달려가 의제를 시해한 항우를 쳐 없애도록 하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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