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법안’]신문업 관련 자료라면 ‘영업 비밀’까지 제출 의무화

  • 입력 2004년 11월 4일 18시 39분


공정거래법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도 기업의 경영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한 공정거래법과 상장등록법인을 대상으로 한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신문사는 없다. 2003년 말 현재 10대 중앙일간지 정도만 자산총액 70억원 이상의 주식회사를 대상으로 한 외부감사법의 적용대상이 될 뿐이다. 이 법은 매년 외부감사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금융감독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토록 하고 있다.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정기간행물 개정안(신문법안)은 모든 일간신문사와 일반주간신문사가 경영자료를 결산일로부터 5개월 이내에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다. 제출대상도 광범위하다. 감사보고서 외에 영업보고서 전체발행부수 유가판매부수 인쇄부수 구독료 광고료까지 신고하도록 했다.

● 5共시절에도 이러진 않았다

5공 시절에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혀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폐기된 언론기본법조차 언론기업의 재산상황 정도를 공개하고 제출토록 하는데 그쳤다. 그에 비해 신문법안의 규정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신문사업에 관한 사항’이라는 모호한 단서만 있을 뿐 어떤 자료를 무슨 목적으로 신고해야 하는지가 분명치 않다.

게다가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까지 신고대상에 포함시켜 정부의 필요에 따라서는 신문사가 밝히기 곤란한 영업비밀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방석호(方碩晧·헌법학) 홍익대 교수는 “이는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위임입법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 과중한 신고의무는 차별입법

이 같은 경영자료 제출과 관련해 신문법안 추진세력은 1975년 제정된 독일의 ‘연방신문통계법’을 거론하곤 하나 이 법은 1997년에 폐지됐다. 우선 유럽연합(EU)의 규정상 신문사와 일반기업을 차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기업집단은 물론 부당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기업보다도 훨씬 과중한 신고의무를 신문사에 지우고 있는 신문법안은 더욱 심한 차별입법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독일이 연방신문통계법을 폐지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민간부문에서 충분히 관련자료를 구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직접 신문사로부터 경영자료를 제출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외부감사법에 따른 감사보고서에 신문사 현황을 알 수 있는 재무제표와 현금흐름표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ABC(신문발행부수공사)협회, 미디어경영연구소, 한국언론재단 등도 비교적 충실한 자료를 내고 있다.

● 언론압박용으로 악용될 우려

여당측은 신문사에 방대한 경영자료를 제출케 하는 명분으로 신문사 경영지원 및 경영투명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으나, 권력의 속성에 비춰볼 때 이를 액면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권력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신문사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경영자료가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김종석(金鍾奭·경제학) 홍익대 교수는 “방대한 경영자료를 제출케 하는 것은 상시(常時)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여당이 신문사의 경영자료 신고를 의무화하고자 하는 속내는 시장지배적사업자를 파악해 신문발전기금 지원배제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조금 지원을 조건으로 상세한 자료를 제출토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유럽 각국도 그런 용도로 신문사 경영자료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신문사를 공공법인 취급하나

네덜란드는 경영이 어려운 신문사를 ‘언론기금(Press Fund)’에서 지원할 경우 자구계획을 담은 회생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신문사로부터 매년 발행부수와 경영상태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받고 있다. 프랑스에도 신문사 경영자료 공개규정이 있지만 대부분 지분변동과 관련된 사항이다. 신문사가 인수 합병될 경우 구체적인 소유형태와 소유자를 독자들이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신문법안이 사기업인 신문사를 사실상 ‘공공법인’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각 부처가 인가한 재단이나 공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반기업보다 상세한 경영자료 공개 및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데, 신문사도 이에 준해서 규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비밀보호 준수조항조차 없다

증권거래법과 외부감사법에 따라 기업의 경영자료를 공시(公示)하는 이유는 주주와 고객에게 회사 경영실적을 제대로 알려 올바른 투자와 구매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법은 기업이 영업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수 있도록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사항을 제한하고 있다. 그보다 더 상세한 경영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 △국세청의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제출 요구권 행사 등에 국한된다고 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비밀보호의무라는 게 있다.

독과점 등에 대한 규제를 위해 자료 요구권을 규정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은 공정거래위가 제출받은 사업자의 자료를 법이 정한 목적 외에 사용하지 않도록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내밀한 자료까지 제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신문법안은 비밀보호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무 제약도 없이 신문사가 신고한 경영자료를 문화관광부 장관이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력의 오·남용에 대한 통제장치가 전혀 없는 셈이다.

경영자료 제출 신고 관련 법률 비교
구분증권거래법외부감사법공정거래법신문법안
대상상장등록법인(해당 신문사 없음)자산총액 70억원 이상 기업(10개 중앙일간지도 해당)대기업집단(해당 신문사 없음)일간신문 또는 일반주간신문
주무기관금융감독위원회증권선물위원회, 공인회계사공정거래위원회문화관광부
제출 자료유가증권신고서, 사업보고서, 정기 보고서, 수시공시 및 공정공시 정보외부 감사보고서 주식소유현황, 재무상황, 회사 현황 ―발행부수, 인쇄부수, 유가부수,
―구독료, 광고료
―재무제표, 영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
―기타 대통령이 정하는 사항
처벌행정조치, 형사처벌, 손해배상책임형사처벌, 과태료 1억원 이하의 벌금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비밀보호규정없음없음있음없음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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