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파고다공원 쪽이나 파고다극장 근처에는 유난히 분식센터가 많았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하교 후 왜 그 먼 곳까지 와서 분식센터를 돌아다녔는지 지금도 의아하기만 하다.
분명 그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별로 없었고 대부분 명륜동 쪽에 보성 경신 서라벌 경복고와 혜화여고, 정동 쪽에 서울고 이화여고 서울예고 등이 몰려 있었는데…. 그 외에 서울시내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종로 쪽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뭐였을까.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아∼맞다! 종로에는 학원들이 많았다. 그때는 대부분의 학원이 종로에 몰려 있었다. 그 유명한 종로학원 등 입시학원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학원들이 밀집해 있었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점에 그 일대는 그야말로 교복 입은 학생들로 인산인해였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종로는 지금처럼 패션가도, 술집이나 극장가도 아니었다. 빌딩 숲을 이루지도 않았고 나지막한 건물에 학원들이 많았다. 허름한 분식집이나 막걸리를 파는 선술집도 많았다.
난 그랬던 종로가 그립다. 학원 강의 끝나면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쫄면 하나 시켜먹으면서 친구들과 수다 떨었던 그곳…. 그 분식센터에는 노래 틀어주는 DJ가 있어서 신청곡도 즉석에서 틀어주고 자신이 마치 최동욱이나 이종환 같은 유명 DJ나 된 것처럼 팬들을 이끌고 다녔다.
장발머리에 군복을 입고 마이크에 앉아 목소리 깔며 신청곡 틀어주고 사연 읽어주면 여학생들이 거기에 반해 ‘꺅∼ ’ 뒤로 넘어갔다.
그곳은 또 남녀 학생들이 요즘말로 ‘작업’ 들어가기 쉬운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골적이지 않았다. 맘에 드는 여학생이 있다 해도 직접 말을 거는 강심장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DJ를 통해 그 여학생이 좋아할 만한 음악과 사연을 띄운다든지…. 당시 DJ는 풋풋한 사랑의 전령사와도 같았다. DJ는 또 신청 사연을 전하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학생을 발견하면 더 느끼한 목소리로 음악을 소개하곤 했다.
“이 음악은 DJ인 제가 저기 외롭게 혼자 앉아 ‘다꽝’만 드시는 머리긴 여좌∼분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줌마, 저기 저∼ 아름다운 여좌∼분께 어서 쫄면 갖다드리세요∼∼.”
“로보가 노래합니다. ‘아이드 러브 유 투 원 미’∼∼∼내 마음이에∼요.”
난 그때 그 기름진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고등학생들의 문화적 돌파구였고 건전한(?) 이성교제의 장이였던 분식센터가 지금도 그립다. 그때의 종로도 그립다.
△1959년 생 △명지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2년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가수 데뷔. 14장의 앨범 발매 △1979년 CBS 라디오 ‘세븐틴’에서 MC로 데뷔.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10년간 진행. 현재 MBC 라디오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 진행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