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02>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11월 9일 18시 4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번쾌 장군이 추현(鄒縣)과 노나라 땅을 휩쓴 뒤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설현(薛縣)과 하구(瑕丘)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제 팽성 북쪽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 셈입니다.”

“관영 장군이 조참 장군의 도움을 받아 정도(定陶)에서 초나라 장수 용저(龍且)와 위나라 재상 노릇을 했던 항타(項他)가 이끄는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처음에는 관(灌) 장군 홀로 사납고 날랜 초나라 군사를 만나 한때는 몹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조참 장군이 이끄는 군사가 때맞춰 이르러 뒤를 받쳐준 덕분에 크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발 장군도 곡우(曲遇)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지금은 팽성 근처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런 전갈대로라면 아직 팽성을 떨어뜨리기도 전에 산동 땅이 거지반 한왕의 손 안으로 들어온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주 하늘의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었던지 한왕을 긴장시키는 소식도 있었다.

“소현(蕭縣)에 초나라 대군이 지키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거기다가 소성(蕭城)은 팽성의 서쪽 50리밖에 안 되는 곳에 있어 팽성의 외성(外城)이나 다름없습니다. 성벽이 높고 두터워 쉽게 떨어뜨리기 어렵습니다.”

정탐을 나간 군사가 돌아와 한왕에게 그런 말을 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은 한신이 오랜만에 입을 열어 걱정을 드러냈다.

“만약 우리가 소성에서 싸움을 질질 끌고 그 사이에 팽성에서 초나라 군사들이 나와 우리 뒤를 치면 우리는 등과 배로 적을 맞는 꼴이 되어 일이 고약하게 됩니다. 자칫하면 팽성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패왕의 대군이 이르러 크게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나가 있는 군사들을 불러들여 집중된 힘으로 한 싸움으로 소성을 깨뜨리고, 그 여세를 몰아 팽성도 패왕의 구원병이 이르기 전에 떨어뜨려야 합니다.”

아직도 50만 가까운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한왕은 그 같은 한신의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로만 보였다. 그러나 한신이 오랜만에 입을 연 터라 그런지 이번에는 별로 고집부리지 않고 한신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관영과 조참만 불러들이는 게 좋겠소. 날랜 말을 탄 사자를 보내 관영과 조참에게 군사를 이끌고 탕현(탕縣)으로 돌아오라 하시오. 그리고 거기서 우리 군사를 정비하여 먼저 소성을 떨어뜨린 뒤에 하루 빨리 팽성으로 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남은 한군(漢軍)과 자신을 따르는 제후군도 탕현으로 몰았다.

팽성에서 멀지 않아서인지 탕현에도 적지 않은 초나라 군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탕현은 한왕이 사상(泗上)의 정장(亭長) 죄를 짓고 한참이나 숨어산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때 얽힌 인연이 있는 데다 한왕이 끌고 온 대군을 보자 성 안의 군민은 기가 죽고 말았다. 며칠 성문을 닫아걸고 저항하는 시늉을 하다가 관영과 조참의 군사가 차례로 이르자 마침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다.

한왕은 다시 군사를 남으로 몰아 소현으로 갔다. 들은 대로 소현 성 안에는 패왕의 족제(族弟) 하나가 5만 군민을 다그쳐 싸울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물녘에야 소성에 이르러 한바퀴 성을 둘러본 한왕이 한신을 돌아보며 인심 쓰듯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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