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맥주의 알코올 농도는 4∼6도이고 소주는 21도쯤 되니까 맥주잔이 소주잔보다 5배 정도만 크다면 안에 들어 있는 알코올은 비슷할 게 아닌가.
술자리에선 술과 관련한 수많은 속설이 오간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를 들어 보면 이런 것들이다.
약한 술부터 마시는 게 덜 취한다(아니 그 반대던가?). 빨대로 마시면 빨리 취한다. 섞어 마시면 더 취한다(또는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 소주 한 사발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감기가 (언젠가) 떨어진다.
이런 술자리 담화의 특징은 경험론에 의거한다는 점이다. 또 술자리에서 퍼지기 때문에 정치한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다. 쉽게 긍정하거나 쉽게 부정한다. ‘쉽게’라는 것은 충분한 논거 없이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거나 턱없이 반론을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술자리를 벗어나면 아무도 검증하지 않는다.
술에 대한 글을 쓰는 처지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집에서 소주잔, 양주잔, 맥주잔을 꺼내 물을 채운 후 쟀다. 소주잔 40mL, 양주잔 25mL, 맥주잔 250mL. ‘한 잔의 알코올 양=잔의 부피×알코올 도수’라는 공식에 대입해 계산했더니 소주 (40×0.21=) 8.4, 양주(25×0.4=) 10, 맥주(250×0.04=) 10. 순한 소주가 나오기 전의 소주(25도)였다면 알코올의 양은 10. 측정 과정에 어느 정도 오차가 있겠지만 한 잔에 들어있는 알코올의 양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측정 대상은 아니었지만 와인글라스와 중국 술잔도 예외는 아니다. 와인글라스는 꽉 채우지 않는 게 에티켓인데 보통 소주잔 두 잔 정도를 따른다. 와인의 도수는 소주의 절반 정도. 중국술은 보통 50도가 넘는데 술잔은 소주잔의 절반 크기다. 결국 어느 술이든 한 잔에 들어가는 알코올은 비슷한 것이다.
오, 놀라워라. 내용은 형식을 규정하고 형식은 다시 내용을 규정한다. 술과 술잔은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쉽게 보지 마시라. 술잔은 술꾼들의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녹아든 결정체였으니.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