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언론법안’]본질 다른 방송법 가져다 신문 규제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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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은 출발점이 다르고 기능과 메커니즘도 달라 규제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언론관련 법안은 그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의 신설조항 중 상당수가 방송법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 바로 거기에 언론관련 법안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신문과 방송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들은 지지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방송사의 경우엔 보도성향과는 별개로 공식적으로 지지후보를 밝힌 사례가 없다. 본래 권력과 싸움을 통해서 성장한 신문은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이 핵심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출발한 방송은 다소 다르다. 방송은 또 한정된 전파를 사용하고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점에서 신문보다 강한 규제를 받아왔다.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신문과 방송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69년 판결은 방송의 공정성 원칙을 확립했다. 중요한 사건을 다룰 때 방송은 반드시 대립하는 양쪽의 입장을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1974년 판결은 ‘선거후보자를 공격한 신문은 당사자가 지면을 통해 반론이나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플로리다주 법률이 언론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다양하고 적대적인 정보의 보도를 보장하는 필수불가결한 장치인 신문편집의 자율권을 규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차이를 인정 않는 여당의 언론법안

헌법학자들이 신문 발행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꼽는 신문법안 제3조(편집의 자유와 독립) 제4조(정기간행물 등의 사회적 책임) 제5조(정기간행물의 공정성과 공익성) 등이 바로 방송법에서 따온 것이다. 신문법안의 편집규약과 독자인권위원회 관련 조항은 오히려 방송법보다 강화된 것이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지낸 박용상(朴容相) 변호사는 “신문에 방송 수준의 공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모든 신문을 공영매체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공 시절 언론기본법도 제3조에 ‘언론의 공적 책임’을 규정하고 있었다. 1987년 이를 폐지하고 정기간행물법과 방송법을 제정할 때 법률 입안자들은 이 조항을 정기간행물법에선 빼고 방송법에만 존속시켰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미 그때 신문과 방송에 대한 규제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당의 언론관련 법안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시장 진입규제도 시대착오적

방송법 개정안은 통신회사의 지상파 방송시장 진입을 금지하는 현행법 조항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개정안과 신문법안은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사가 지상파 방송 및 종합편성 또는 보도전문편성을 하는 방송사업을 겸영할 수 없도록 했다. 이처럼 신문 방송 통신 등 3개 매체의 영역을 분리하는 미디어정책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3개 매체 간 진입장벽을 허무는, 세계적인 미디어 융합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방송과 통신의 교차소유 규제가 없다. 미국도 동일시장(방송신호의 도달범위로 나뉘며 현재 시장 수는 210개)이 아닌 이상 제한이 없고, 영국도 2002년 거대 통신사업자인 BT에 방송 진출을 허용한 바 있다.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해 6월 동일시장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금지조항을 폐지했다. 일본은 아사히 마이니치 산케이 등 5개 신문사가 5대 지상파 민영방송의 대주주다.

●지상파 방송 중심의 방송법 개정안

전문가들은 방송법 개정안이 미래성장산업인 미디어산업 육성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대신 지상파 방송 중심의 수구적인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황근(黃懃·방송정책학) 선문대 교수는 “시청점유율이 전체 방송시장의 70%가 넘는 지상파 방송시장에 대한 진입 규제는 신규사업자의 진입 자체를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선진국은 시장독과점은 규제해도 시장 진입 자체를 통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 현재 KBS MBC SBS 3사의 총매출액(비영리사업 수입 제외)은 2조9775억여원으로 전체 방송시장의 58.3%를 차지했다. 광고 매출액은 2조3758억여원으로 점유율이 74.7%에 이르고, 시청점유율은 그보다 높은 78.7%다. 지상파 3사는 기존사업자로서의 이점을 이용해 뉴미디어에서도 높은 시청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정작 규제할 것은 방송독과점인데…

한국 방송산업의 고질적 문제인 지상파 방송의 시장독과점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으나 방송법 개정안엔 그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성대(盧成大) 방송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의 독점으로 방송매체간 균형발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은 맞다. 겸영 제한 등 실질적인 조치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내놓겠다”고 답변했으나 방송법 개정안엔 반영되지 않았다.

미국은 전체 방송시장에서 한 기업이 소유한 TV방송사들의 가구점유율이 45%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가구점유율이란 방송국의 전파가 도달하는 가구 수, 즉 잠재적 시청자의 비율로서 시청점유율과는 다르다. 독일은 한 기업에 속하는 채널들의 시청점유율이 연평균 30%에 도달할 경우 ‘지배적인 의견세력’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가한다. 프랑스도 지역 지상파TV의 전파가 도달하는 가구 수가 600만이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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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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