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 천사]<45>서울 강서구 ‘실버인형극단’ 자원봉사대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8시 23분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인성장애인복지관 3층에서 ‘실버인형극단’ 할머니들이 장애아들을 위한 인형극을 공연한 뒤 아이들에게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원대연기자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인성장애인복지관 3층에서 ‘실버인형극단’ 할머니들이 장애아들을 위한 인형극을 공연한 뒤 아이들에게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원대연기자
“또래 노인들이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인형극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살씩 젊어지는 것 같아요. 팔 아픈 것도 잊는다니까요.”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인성장애인복지관 3층. 백발이 성성한 강서자원봉사센터 소속 ‘실버인형극단’ 할머니들이 분주히 인형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윽고 까만 막 뒤에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도깨비 인형 4개가 동시에 솟아올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40여명의 어린이가 손뼉을 치며 환성을 질렀다.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도 인형들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 웃음을 터뜨렸다.

“대사와 동작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는 굉장히 바빠요. 행여나 막 바깥으로 손이라도 보일까봐 매우 조심스러워요.”

봉사대장격인 유선금 할머니(75)는 “처음에는 하루 몇 시간씩 힘들게 연습을 했지만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말했다.

50대 후반에서 80대까지의 할머니들로 구성된 실버인형극단이 탄생한 것은 지난해 3월. 할머니들이 인형극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은 현대인형극단의 여영숙씨가 각본과 지도를 맡았다.

하지만 연습을 거쳐 공연을 갖기까지는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젊은이들도 익히기 힘든 인형극을 연로한 할머니들이 배우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 할머니들은 “틀릴 때마다 벌칙으로 얼굴에 스티커를 붙였는데 나중엔 얼굴 전체가 스티커투성이가 되기도 했다”며 웃었다.

인형의 대사도 각각의 배역을 맡은 할머니들이 연기연습을 거쳐 직접 녹음했다. 바느질 솜씨를 살려 인형과 인형 옷, 무대도 모두 직접 만들었다.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윤여경씨는 “외로운 분들을 찾아 공연하는 봉사활동이 된 뒤 할머니들이 더 열심히 연습하고 즐거워 하신다”며 “지난해 춘천국제인형극제 아마추어부문 연기상을 수상하고 일본 인형극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인기”라고 귀띔했다.

김남수 할머니(83)는 봉사가 주는 기쁨에 대해 “내 80평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다른 노인들이 우리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할 때 정말 뿌듯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디든 달려가 공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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