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생들은 교수실을 가깝게 여긴다. 강의 방식, 시험 내용, 성적평가 기준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얘기한다. 담당 교수뿐만 아니라 학과장에게까지 찾아가 불만을 토로하니 교수들, 특히 나 같은 ‘초짜’ 교수들은 강의 때마다 학생들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다는 점. 감사의 카드를 전하거나 마지막 강의 후 사진을 같이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학생들도 있다. 외국인 교수라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학생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
학생들의 이런 적극적 태도에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강의를 듣는 만큼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겠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서비스 만족도에 대한 최종 평가는 학기말에 있는 공식 강의평가 때 이뤄진다. 이 평가는 교수들로 하여금 보다 충실하게 강의를 준비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 얼마나 수업 준비가 철저한지, 강의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는지,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졌는지 등의 항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항상 강의 내용을 보강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미국식 교수평가시스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같은 과의 한 노교수는 “‘텔레비전 세대’인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요구한다”면서 “학생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강의의 알맹이보다 겉포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배움이 본질적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쉽고 재미있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교수와 학생간의 ‘공모’가 이뤄지기 쉽다는 것이다.
나도 첫 학기에 시험문제를 어렵게 냈다가 강의평가시 ‘시험문제의 적합성’ 항목에서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고 나서 교육적인 필요보다는 ‘불필요한 불만’을 사지 않기 위해 시험 난이도를 조정한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대학에도 강의평가제가 도입되고 일부 대학에서는 평가 내용을 학생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학생이 강의 내용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강의평가제가 단순히 교수들에 대한 ‘인기투표’ 쯤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완장치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평가가 강의 수준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평가 주체인 학생들의 진지한 자세, 강의 내용의 충실성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평가 항목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은주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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