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날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파월 장관은 사임을 발표(15일)하기 직전인 1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샤론 총리를 견제할 수 있는 더 큰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파월 장관으로서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샤론 총리만 제어하면 이-팔 평화협상의 진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파월 장관은 중동평화협상을 위해 1년 정도 더 국무장관직을 수행하기 원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파월 장관은 사임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의 집권 1기만 맡으려고 했다”며 원래부터 준비했던 사임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상 ‘경질’됐다는 얘기다.
▽중동평화구상에 착수한 라이스=차기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 자신의 측근들에게 워싱턴 주재 유럽 외교관들과 접촉할 것을 지시했다. 라이스 보좌관의 메시지는 은밀하면서도 단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별도로 중동평화구상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작업이었다. 라이스 보좌관이 현 국가안보보좌관이고, ‘이라크 안정화 그룹’을 맡고 있긴 하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이면협상에 뛰어든 것은 이례적이었다.
워싱턴 주재 유럽 외교관 중 한 명은 “라이스 보좌관이 국무부를 따돌리고 직접 뛰어든 듯한 인상을 받았다”며 “백악관이 중동문제를 직접 관장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파월 장관을 따돌리고 직접 라이스 보좌관에게 집권 2기의 이-팔 평화구축 작업을 지시했다는 얘기다.
라이스 보좌관의 목표는 부시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이-팔 평화구상에 접목시키는 것. 부시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이미 이-팔 평화구상에 대한 자신의 기본방향을 밝힌 바 있다.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다.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내년 1월 9일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를 민주적인 절차로 치러야 한다는 것. 정통성을 확보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지도부가 구성돼야 이-팔 평화협상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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