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軍‘괴문서’ 고질병 언제까지…

  • 입력 2004년 11월 24일 18시 09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이들을 영원히 똥별, 돈별, 식모별로 취급하겠다.”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인근에 뿌려진 육군인사 관련 괴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괴문서는 “육군 인사담당 고위관계자 가까이서 근무한 자, 무지막지한 뇌물과 향응제공을 한 자, 부인을 고위 장성 가정집에 식모살이를 시킨 자들이 진급됐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는 지난달 15일 진급한 장성들이 20년 이상을 바쳐온 군 생활을 한순간에 ‘쓰레기’로 취급했다. 문서에서 거명된 장성들의 리더십과 지휘권은 군 검찰의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바로 서기 어렵게 됐고 장성들의 사기 저하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불거진 과정에 있다.

어느 조직이든 위로 갈수록 자리가 적어지고, 승진을 둘러싼 갖가지 암투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명예를 먹고 산다’는 군에서 괴문서 살포라는 치졸한 방법이 동원된 것은 한국군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괴문서 작성자들은 문서에서 자신을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괴문서 살포는 한국군의 고질병이다. 지난해 10월에도 ‘해군의 심각한 인사비리 실태’라는 괴문서가 군 내부에 돌았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털어버리려는 군 수뇌부의 태도에 군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군 수뇌부는 “이번 장성 인사는 어느 때보다 공정했다”고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왜 괴문서 작성자가 군내 인사, 감찰, 감사, 수사 기관의 문을 먼저 두드리지 않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인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진급심사 4심제를 도입했다면 이제 불신과 불만을 공식 창구로 흡수해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 절실하다.

이번 파문이 일부 관계자의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전면적으로 군 인사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만 실추된 장성들의 명예와 지휘권을 바로 세우고,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호원 정치부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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