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의 양심은 어디로 갔나

  • 입력 2004년 11월 29일 18시 27분


일본 사법부가 끝내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외면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어제 군인과 군속,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전쟁 피해자와 유족 35명이 제기한 보상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기각, 소송비용은 원고 부담”이라는 짤막한 선고문을 읽은 뒤 곧바로 퇴장했다고 한다. 국가의 잘못을 외면하는 부끄러운 판결임을 재판부 스스로 인정한 군색한 모습이 아닌가. 일본의 양심세력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개탄스럽다.

이번 소송은 13년을 끌었다. 일본 사법부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 했다는 증거다. 3심까지 거치며 재판부는 한국인들이 징집돼 전장에서 희생되고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을 상대하도록 강요받은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또 아시아 각국에서 60여건의 관련 소송이 이어진 것은 국제사회가 일본의 전쟁 범죄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피맺힌 요구를 “일본 정부에 보상책임이 없다”는 한마디로 묵살했다. 39년 전 ‘청구권’이라는 명목으로 서둘러 봉합한 일본 정부의 전후 책임 처리를 빌미로 수많은 외국인 피해자를 외면한 비(非)인도적 판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번 판결로 아시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이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앉으려는 일본의 속셈이 드러났다. 반성은커녕 문부상이 “위안부와 강제연행 같은 표현들이 줄어 잘 됐다”는 망언(妄言)을 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되려면 “일본은 반(反)인도적 집단”이라는 전쟁 피해자들의 절규에 대답할 말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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