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기 바쁘게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패왕에게 그렇게 팽성의 소식을 전했다. 바로 그날 팽성을 빠져나왔다는 한 무리의 장사치들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반가워해야 할 소식이었으나 왠지 듣고 난 패왕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팽성은 과인이 도읍으로 삼으면서 다시 수축한 성이라 그 성벽의 높고 두꺼움을 잘 안다. 10만이 아니라 단 1만이라도 거기 의지해 지키려고만 들면 우리 3만 군사로는 어찌해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그 군사에게 물었다.
“그럼 팽성 밖에 나가있는 군사들 중에 가장 날래고 굳센 갈래는 어디 있는 누구의 부대라더냐?”
“듣기로는 소성 안팎의 군사인 듯합니다. 그 동쪽 벌판에 관영과 조참이 이끄는 한군(漢軍) 3만을 주력으로 제후군 몇 만이 펼쳐져 있습니다. 또 성안에도 제후군 3만이 있어 성 밖 군사와 서로 돕고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는데, 그 기세가 자못 날카롭다 합니다.”
그 말에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패왕이 그 군사를 내보내고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저물 때까지 군사들을 푹 쉬게 하라. 어두워지면 바로 팽성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호릉에서 그랬던 것처럼 새벽에 성 밖에 진치고 있는 것들부터 쓸어버린 뒤 성안을 들이친다.”
패왕이 그 같은 명을 내리자 장수들도 각기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가 거느린 군사들에게 그대로 전했다. 초군(楚軍) 장졸들은 그 말에 따라 남은 한나절을 다시 쉬어 이틀 밤에 걸친 피로를 씻었다. 하지만 패왕이 다음날 일찍 팽성을 칠 것이란 말은 벌써 소문이 되어 초군의 진채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다. 패왕은 군사들에게 밥과 고기를 든든히 먹이게 한 뒤 장수들을 군막에 불러 모았다.
“이제부터 우리는 가장 바쁘고 고단한 하룻밤 하루 낮을 보내야할 것이다. 군사의 움직임은 소문보다 빨라야 하고, 싸움은 벼락 치듯 단숨에 적을 쳐부수어야 한다. 이제부터 길은 팽성이 아니라 소성으로 잡는다. 모두 닫기를 배로 하여 소성으로 가자!”
다음으로 들이칠 곳이 어디인가를 정하는 것은 군사를 움직이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패왕이 낯색 한번 변하지 않고 아침에 한 말을 바꾸어 버리자 장수들은 어리둥절했다.
“이 아침 대왕께서는 바로 팽성으로 가시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용저가 아무래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패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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