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진삼현]고속철 정차역 더 늘려선 안된다

  • 입력 2004년 12월 6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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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의 본래 기능은 거점지역들을 빠른 시간 안에 연결해 이들 지역 간의 공간적 제한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속철도의 고유기능을 저해하는 주장과 정책이 계속 제기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국회에 올라와 있는, 서울 영등포역 정차 요구 등 중간 정차역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차역을 늘리라는 주장은 그것이 지역주민의 요구 때문이든 정치적 고려 때문이든 고속철을 저속철로 붙들어 매는 행위로, 그렇지 않아도 중간역의 증가로 ‘누더기철’이 되어버린 한국고속철도(KTX)를 아예 수도권 전철화하자는 것과 다름없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고속철 선진국인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는 최근 전쟁이라고 할 만큼 고속철의 성능개선 경쟁이 치열하다. 시속 500km 이상을 지향하는 그들에 비하면 우리 KTX의 시속 300km는 고속철로서 의미를 잃게 할 정도다. 중국의 상하이는 시내와 공항 간 31km를 시속 430km로 8분 만에 연결하는 자기부상열차를 운영하면서 이를 주변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고속철도는 정상속도에 이르기 위해 가속 길이와 감속 길이가 각각 30km 정도 필요하다.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중간 정차 없이 1시간 정도 KTX가 달린다고 할 때 ‘제 속도’를 낼 수 있는 시간은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반면 가속과 감속을 하는 데 40분이 든다는 얘기다. 당연히, 더 이상 추가로 정차해선 안 된다.

KTX는 12월 15일부터 경부선은 서울역을, 호남선은 용산역을 각각 전용 시발역으로 조정해 서울 서남부 접경지인 광명역의 정차율을 종전의 39%에서 60%로 늘릴 것이라고 한다. 이는 고속철의 ‘속도’를 살리면서 4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들여 경부고속철 시발역으로 건립한 광명역의 본래 기능도 회복시키는 올바른 정책으로, 서울 도심의 효과적인 교통량 분산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왕에 정부가 계획 중인 전철망, 즉 서울 여의도와 영등포역 광명역 안산을 연결하는 신안산선, 인천국제공항과 광명역 분당을 연결하는 신공항선, 그리고 제3 경인고속도로의 조기 착공이 적극 요구된다.

수도권 교통량 및 전국의 연계 교통망을 종합 고려한 정부의 이 같은 정책방향에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망정 정차역 증설 등 거꾸로 가는 요구를 들고 나오는 것은 매우 단편적이고, 세계 추세에도 뒤떨어지는 편협한 시각이다.

정차역 증설 주장만이 문제는 아니다. 국가가 정책사업으로 계획해 이미 투자가 끝나거나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기존투자를 무력화하거나 이중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이기적인 움직임은 이번 기회에 완전히 차단돼야 한다. 사회간접시설의 투자 및 운영을 담당하는 부처도 일시적인 어려움이나 침체에 당황해서는 안 된다. 일부의 문제제기로 인해 국가기간사업의 운영과 추진이 변경되거나 중단되는 상황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20년 준비 끝에 탄생한 KTX가 고속철도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게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래야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향상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진삼현 교통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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