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판결문에는 이 의원이 조선노동당의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에 가입하고 이후 그 하부 조직인 ‘민족해방애국전선(민해전)’에서 활동한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판결문은 검찰의 공소 내용 중 재판부가 사실로 받아들인 부분만 인용한 것이다.
▽1심 판결문을 통해 본 행적=이 의원은 1992년 1월 민해전 강원도위원장 양모 씨를 만났다. 당시 양 씨는 이 의원에게 “한민전 노선에 따르는 지하당에 입당했다”고 신분을 밝힌 뒤 함께 일할 것을 제의했다. 이후 이 의원은 한민전 가입을 결심하고 4월 18일 양 씨와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주택에서 한민전 가입식을 가졌다. 당시 이 의원은 조선노동당기를 벽에 걸고 김일성(金日成) 주석과 김정일(金正日)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 △나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형의 혁명가이다 △나는 한민전의 영예로운 전사이다 등의 맹세를 했다.
이 의원은 이 자리에서 양 씨에게서 ‘강재수’라는 가명과 ‘대둔산 820호’라는 당원번호를 부여받고 자신의 신상명세서를 제출한 뒤 강원지역 조직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이 의원은 같은 해 6월 양 씨와 함께 이모 씨 등 2명의 민해전 가입식 및 ‘조국통일애국전선’ 결성식을 가졌다. 조국통일애국전선은 민해전 강원지역 조직의 명칭으로, 이 의원은 춘천지역 조직책을 맡았다.
이 의원은 8월에는 춘천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던 한모 씨(여)를 통해 입수한 40여 종의 학생운동 관련 도서목록을 양 씨에게 전달했으며 9월 구속됐다.
검찰이 기소한 그의 범죄 혐의는 △도서목록 전달(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수집탐지방조죄) △민해전 등 가입(〃 반국가단체의 구성) 등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두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판결과 당시 재판부 증언=1993년 8월에 내려진 이 의원의 항소심 판결문에도 그가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 의원이 항소한 부분은 “양 씨에게 전달한 도서목록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국가기밀이 아니고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도 아니었으므로 국가기밀 수집탐지방조죄를 적용한 것은 잘못됐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는 “일반적인 도서목록이라고 해도 반국가단체가 알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국보법상 국가기밀에 해당된다”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 배석 판사였던 김선중(金善中) 변호사는 9일 “항소심은 1심의 범죄 사실은 전부 인정하고 양형만 줄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범행 동기나 지위, 활동 경력 등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1심 형량이 높다고 판단해 형량만 징역 4년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노동당 가입 여부도 중요하겠지만 김일성 초상화를 걸어놓고 신봉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사상 문제가 사건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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