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진 멜로디와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백발의 아저씨가 들려주는 희망얘기에 하나, 둘씩 지갑을 열어 ‘청소년 장학금 모금함’을 채웠다. 그러면 그는 200원짜리 라면장사를 하다가 4선 의원(11∼14대)이 된 자신의 인생 역정이 담긴 ‘꿈 깡 꾀 끼 끈’을 한 권씩 나눠줬다.
1978년 정계에 입문하려다 실패한 신 전 의원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에서 4평 남짓한 라면가게를 차려 놓고 생계를 꾸리다가 81년 제11대 국회의원으로 인생의 꿈을 이뤘다.
그는 “꿈이 있었기에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고, 또 끊임없이 노력했기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요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신 전 의원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방직공장을 3년여 다니며 돈을 모은 뒤에야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마장동에서 영등포까지 걸어 다니며 신문배달까지 한 끝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추운 겨울날 만두가게 굴뚝에 몸을 녹이며 ‘가난은 되물림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1991년 당시 큰 아들의 결혼 축의금 1억여 원 전액을 기반으로 만광장학회를 설립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장학회는 해마다 ‘꿈을 가진’ 10, 20대 고학생 11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96년 정계를 은퇴한 뒤로도 그는 줄곧 장학회 회장으로 후원활동에 전념해 왔다. 16년간의 의정활동 중 생긴 개인 부채가 2억여 원에 달하지만 장학재단에서 ‘원금’을 찾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는 요즘 직접 서울 강남, 을지로 등 지하철 역사를 돌며 시민들에게 희망의 노래와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현장에서 자서전 등을 판매해 생기는 수익금 전액은 장학회 장학기금으로 접수된다. 02-733-1988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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