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블레이드3’의 웨슬리 스나입스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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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편에 이어 ‘블레이드3’에서도 강력하고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웨슬리 스나입스. -사진제공 영화인
1, 2편에 이어 ‘블레이드3’에서도 강력하고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웨슬리 스나입스. -사진제공 영화인
속편은 늘 전편보다 못한 법이라는 말은 이제 그리 통용될 만한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블레이드’ 시리즈에서만은 그렇다. 스티븐 노링턴 감독의 1편만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편 또한 꽤나 주목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3편은 늘 1, 2편보다 못한 법이라는 얘기만큼은 여전히 맞는 말이다. 이것 역시 ‘블레이드’ 시리즈를 보면 그렇다. 이번 3편은 기대치를 많이 밑돈다. 기다렸던 만큼 실망도 크다. 하지만 그걸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미 그 점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이런 시리즈는 영화평이 어떻든 흥행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다. 시리즈는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3편은 1편에서 각본을 맡았던 데이비드 고이어가 메가폰을 잡았다. 시리즈의 기본 골격, 그러니까 변종 뱀파이어와 블레이드와의 한바탕 싸움 이야기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에는 그동안 1, 2편에서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를 도왔던 위슬러(크리스 크리스토퍼슨)가 죽임을 당하고 대신 그의 딸이 신기(神技)의 화살 솜씨를 보이며 블레이드와 함께 뱀파이어들을 일망타진하는 데 앞장선다. 이번 변종 뱀파이어의 우두머리는 어느 고대 유적지에 수천 년 동안 묻혀 있던 순수 혈통의 존재다. 블레이드는 그를 없애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는다.

뱀파이어, 곧 흡혈귀 혹은 드라큘라를 만들어 냈던 원작자 브람 스토커가 현세까지 살아 있어서 하이브리드(변종)가 되어 버린 자신의 후예를 목격한다면 아마도 대경실색, 호통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야만적이고 불법적이며 악마적인 행위는 단순하게 공포를 자아내는 것 말고도 사회적, 계급적, 성적,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가 여성의 목에 자신의 날카로운 이빨을 박는 장면은 마치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여성의 몸 안으로 밀어 넣는 것 같은 극단의 에로틱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원래의 드라큘라가 만들어진 것은 그 역사를 곰곰이 따져 보면 18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강고한 성적 억압과 무관치 않다. 은밀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흡혈귀는 사람들 내부의 어두운 자아를 대신했다. 그 때문에 진짜 흡혈귀 영화는 선악의 대칭점이 명확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흡혈귀를 쫓아 가슴에 말뚝을 박는 주인공이 사실은 ‘흡혈귀 같은’ 내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염두에 두면 ‘블레이드’ 시리즈의 흡혈귀들은 달라져도 아주 크게 달라진 모습들이다. 무엇보다 선악의 싸움이 확실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대중적으로 크게 지지 받는 대목이다. 고전으로부터 이어져 왔던 관습적인 이야기의 틀을 신세대에 맞춰 MTV답게, 그리고 B무비답게 완전히 해체하고 재구성해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는 드라큘라 퇴치사였던 반 헬싱 박사의 후예지만 백인이 아니라 우람한 근육질의 흑인이다. 그가 쫓는 뱀파이어들은 트란실바니아 성에 살고 있는 드라큘라와는 달리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고 버젓이 도심의 낮을 활개 치며 다닌다.

변종 흡혈귀들과 변종 퇴치사의 이야기. 무엇보다 하드고어(hardgore·사지절단, 내장이 노출되는 유의 영화)적 장면에 아시아적 무예를 결합시킨 특징이 마니아층 관객을 단단히 묶어 놓는 이 영화의 요소다.

이제는 꽤나 나이가 든 웨슬리 스나입스는 이번 3편에서도 어김없이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웨슬리 스나입스의 스타성에 대한 3편의 의존도는 다소 지나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3편은 늘 1, 2편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불문율을 깨지 못하게 한 요소다. 블레이드만큼 매력적이었던 뱀파이어의 우두머리 프로스트(스티븐 도프) 같은 1편의 캐릭터를 이번 영화에서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턱에 있는 빨판으로 인간뿐 아니라 뱀파이어의 피까지도 빨아 먹는 변종 중 변종의 출현 때문에 기이하게도 뱀파이어 세력과 블레이드가 손을 잡는 그럴 듯한 드라마 역시 3편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는 ‘블레이드’가 간단히 관객 100만 명은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이다. 이맘때는 늘 조금은 단순한 영화가 ‘되는’ 법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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