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34>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7시 4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韓王) 신(信)이 대왕께 문후 올립니다. 팽성 북문을 지키다가 어가(御駕)를 호위하러 달려왔습니다. 오는 길에 새왕(塞王)과 적왕(翟王)을 만나 그 패군을 수습하느라 이제야 대왕의 본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나라의 기치를 든 기장(騎將)이 한왕을 대신해 그렇게 외쳤다. 이어 함께 온 다른 기병들도 각기 제 주인의 안부를 전했다.

“새왕 사마흔이 삼가 대왕께 문후 올립니다.”

“적왕 동예가 대왕께 문후 올립니다.”

그리고 뒤이어 한왕 신과 새왕 적왕이 이끈 3만의 군사가 그 산등성이에 보태졌다. 그들 세 왕이 한왕을 찾아보고 군례를 올리자 기운을 되찾은 한왕이 물었다.

“과인이 팽성을 얻을 때는 일곱 제후와 왕이 함께하였는데, 그중 셋이 이렇게 오셨구려. 다른 제후 왕들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오.”

눈치 빠르고 세상 물정에 밝은 새왕 사마흔이 쫓기는 중에도 알아본 제후들의 뒷소문을 한왕에게 전해주었다.

“하남왕 신양은 소성(蕭城) 밖에서 패왕의 창에 꿰여 죽고, 은왕 사마앙도 사수(泗水)가에서 난군 중에 목숨을 잃었다 합니다. 안에서 소성을 지키던 위왕 표는 성 밖으로 구원(救援)을 나왔다가 다시 성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쪽으로 달아났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또 상산왕(常山王) 장이와 전 한왕(韓王) 정창은 북문에서 흩어질 때 다른 제후군처럼 동쪽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아직은 생사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

“상산왕은 현인(賢人)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오. 틀림없이 팽성을 빠져나가 뒷날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외다.”

한왕은 그렇게 단언했지만 얼굴은 알아보게 풀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오래잖아 한군의 기세를 돋워줄 일이 다시 생겼다. 아침밥을 지어 먹은 한군이 잠시 쉬고 있는데, 또 한 떼의 적지 않은 군사들이 북쪽에서 몰려왔다. 팽성이 무너질 때 한군 본진을 따라나서지도 못하고 동쪽으로 달아나는 제후군에 끼지도 못한 한군과 제후군으로, 그 머릿수가 2만이 넘었다.

이끄는 장수도 없이 쫓기던 그들 2만은 무턱대고 초나라 군사들이 없는 곳으로 달아나다 보니 남쪽으로 길을 잡게 되었다.

하룻밤을 정신없이 달린 뒤에야 팽성보다 더 초나라 깊숙이 들어왔음을 알고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왕이 길라잡이로 남긴 사졸 하나를 만나게 되어 그리로 오는 길이었다.

그럭저럭 모인 군세가 15만이 넘자 한군 장졸들뿐만 아니라 한왕의 기세도 크게 살아났다.

모든 장수와 막빈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모이게 한 뒤 한왕이 말하였다.

“팽성에서는 아래위가 모두 방심하고 태만하였다가 큰 낭패를 당했소. 그러나 여기 모인 군사가 15만이 넘고, 사방을 떠돌며 과인에게 돌아올 길을 찾고 있는 장졸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니, 이제 한번 맞받아칠 때가 된 듯하오. 이 등성이 아래 벌판에 녹각과 목책을 세우고 진채를 옮겨 기다리다가 뒤쫓아 오는 항왕의 군사와 결판을 내는 게 어떻겠소?”

그 한달 한왕의 허풍과 변덕에 병권을 넘겼다가 쓴맛을 톡톡히 본 대장군 한신이 나섰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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