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분야가 있다. 바로 문화다. 지난 20년간 한국은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한국 문화는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비슷한 문화권인 일본, 중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한국 문화 관련 이벤트는 수없이 많았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파리에서 열린 ‘서울의 봄’ 같은 행사에는 거액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에 그쳤을 뿐 후속 효과는 없었다.
현재 프랑스에 알려진 한국 문화로는 영화와 문학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이마저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프랑스 문화가 널리 알려지고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는 반대다.
그나마 한국 영화는 최근에 꽤 발전했다. 파리에서 한국 영화 축제가 열리면 단골로 찾는 마니아들도 있다. 국제적 수준의 감독들이 등장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한국 영화계의 전문가들과 관련 기관의 공무원들이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힘을 발휘한 덕분이기도 하다.
반면 문학 분야에선 투자한 비용과 시간만큼의 소득이 없었다고 본다. 한국의 여러 재단의 후원으로 수많은 한국 작품이 프랑스어로 번역됐지만 한국 작가 이름을 기억하는 프랑스인은 찾기 어렵다. 질보다 양에 치중한 탓이다.
번역 대상 작품 선정에도 문제가 있다. 서울에서 인기 있는 작품이라고 해서 파리에서도 인기를 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도 프랑스 사람들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에서의 유명 작가, 베스트셀러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외국에 전파하는 데 ‘마술 공식’ 같은 것은 없다.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프랑스에 잘 알려진 일본, 중국 문화를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파리에서 한국 산수화 전시회를 한다면 그다지 많은 시선을 끌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프랑스인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산수화’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리면 더 많은 관람객이 모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한국 그림의 독특한 분위기를 발견하고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분명 생길 것으로 믿는다. 한국 영화가 파리에서 이 정도 눈길을 끄는 것도 앞서 프랑스인들을 끌어들인 일본, 중국 영화의 후광 효과를 적잖이 본 덕분이다.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문화 콘텐츠다.
‘오천 년 역사’를 내세우며 판소리 공연만 계속한다면 한국의 이미지는 과거 모습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살아 본 한국은 아주 젊고, 힘있는 나라였다. 이런 역동적인 모습을 알리는 데는 오히려 록이나 재즈 공연 같은 게 어울리지 않을까.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막대한 돈만 쏟아붓는 일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알리고 싶은 문화만 알리는 것,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문화 수출일까.
▼약력▼
△1950년 생 △한국문학 번역가 △주한 프랑스대사관 참사관, 주한 프랑스문화원장 역임
파트릭 모뤼스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INALCO)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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