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만난 선배 세 명이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집에서 만드는 맥주가 매스컴에 소개됐는데 한번 도전해보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돈은 있으나 시간이 없고, 노는 처지인 나는 돈은 없고 시간이 많을 테니 함께 해보자는 설명을 덧붙였다. 생산된 결과의 4분의 1은 내 몫으로 나눠주겠다고 했다.
제의를 받아들였다. 술이라는 게 매일 들여다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익지 않겠는가. 술 빚는 장인들에 대한 몇 권의 만화(명가의 술, 맥주명가 스틴포 등)가 떠올랐다. 내가 빚어서 내가 마신다? 정말 그럴싸하지 않은가.
얼마 후 물건이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장을 풀었다.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부피가 10L쯤 되는, 드럼통 비슷한 플라스틱통 하나와 여러 개의 갈색 플라스틱병이 전부. 그리고 맥주의 원료가 되는 가루와 효모, 소독약이 들어 있었다.
맥주를 빚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모든 설비를 물로 깨끗이 씻은 후 소독을 한다. 잡균이 섞이면 술을 망치기 때문이다. 원료를 물에 풀어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가면서 끓인 후 식혀서 효모와 함께 큰 통에 넣고 상온에서 1차 발효를 시작했다. 그렇게 1주일을 기다린 후 이번엔 작은 병에 나눠 담고 설탕을 섞은 후 온도를 낮춰 2차 발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당분이 알코올로 변한다. 이렇게 꼬박 2주일이 걸려 맥주가 완성됐다.
주주이자 유일한 고객 세 분을 모시고 시음 행사를 가졌다. 대성공이었다. 다들 배가 부를 정도로 충분히 마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초의 주조에서 성공한 데 한껏 고무된 나머지 두 번째 작업에선 기교를 부렸다. 2차 발효 직전에 강한 맛이 나는 위스키를 조금씩 섞은 것이었다. 그러나 야심작은 참담한 실패였다. 다시 모인 고객들은 맥주 맛을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 잔씩 마신 후 누구도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2주일에 걸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홍가네 맥주’의 최고경영자(CEO)는 완전히 기운을 잃었다. 고객의 관심도 떠났고 열정도 식었다. 공장은 두 번의 생산을 끝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혁신을 위한 혁신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배웠다. 기업이 영속성을 갖기 위해선 CEO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그 일이 있은 후 수십 년씩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기업인들에게 끝없는 존경을 바치기로 결심했.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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