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한국언론학회의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 분석’ 보고서는 올해 6월 초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후(後)폭풍을 몰고 왔다.
탄핵에 대해 찬반으로 갈렸던 국회는 이 보고서에 대한 찬반 입장으로 나뉘어 다시 격렬한 정치공방을 벌였다. 방송위원회는 스스로 의뢰한 이 보고서의 결과에 놀라 탄핵방송 심의 자체를 포기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였다.
탄핵방송의 공정성 논란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연결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학계에서는 당시 회장을 맡았던 박명진(朴明珍·서울대 언론정보학과·사진) 교수가 아니었다면 언론학회가 이 연구를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학자적 양심과 진실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 같은 정치적 부담을 피해 갔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피해 온 박 교수를 20일 서울대 연구실로 찾아가 만났다.
“학교에서 20년 넘게 방송론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입장에서 편파보도 시비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방송론의 첫 시간에 가르치는 것이 공정성을 포함한 공영성 이념이거든요.”
10월 회장 임기를 마친 그는 현 정부 들어 방송의 공정성이 두드러지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절정이 탄핵방송이었다고 회고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수십 명의 젊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도 처음에는 방송이 공정했다고 주장하다가 스스로 해 놓은 분석 결과를 보고는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보고서 공개 후 학회를 겨냥한 노골적 비난은 학회의 수장으로서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일부 진보 성향의 교수들은 보고서에 참여한 교수들의 정치적 성향과 경력을 문제 삼으며 연구 결과 자체가 편파적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적용 가능한 거의 모든 방법론이 동원됐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누가 하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게 돼 있어요. 학자들 스스로 학문의 자율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는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탄핵에 대한 입장과 탄핵방송이 공정했느냐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지요.”
박 교수는 방송 종사자들이 스스로 만든 공정성 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더욱 안타까웠다고 했다.
“공정성 기준은 1980년대 이후 방송계 선배들이 사내 공정방송위원회 등을 통해 투쟁하며 학계와 공조해 쟁취해 낸 성과물입니다. 지금의 진보세력이 집권하는 데도 이 공정성 기준이 기여했을 거예요. 이 기준을 버린다면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방송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방송 종사자들의 엘리트주의적 계몽주의를 지적하며 “특히 갈등이 이처럼 심각할 때는 공영방송이 판단의 주체가 되어 시청자를 계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탄핵방송 보고서에 참여했던 연구진은 내년 상반기 중 이 보고서를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덜어 낸 박 교수는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고교 동창생들과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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