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밑줄긋기]이름, 버려야 할 때와 기억해야 할 때

  • 입력 2005년 1월 6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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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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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바는 이름을 빼앗아 지배하는 마녀야. 하지만 네 진짜 이름을 잊어버리면 안돼. 진짜 이름을 잊어버리면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게 되니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가 치히로에게―》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DVD·대원·사진)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땐, 센과 치히로가 형제나 남매쯤 되는 줄 알았다.

우연히 신들의 온천장에 잘못 발을 들여놓은 10세 소녀 치히로는 온천장을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 된다. 또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유바바의 하수인으로 살던 소년 하쿠는 그를 사랑하게 된 치히로가 이름을 불러주자 자신을 되찾는다.

이름은 스스로 짓는 게 아니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키워드다. 창씨개명처럼 이름을 빼앗는 것은 지배의 요건이고 이름을 잊지 말라는 말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뜻일 거다.

상당히 교훈적인 메시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하쿠의 조언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졌다. ‘네가 이전에 누구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름을 버리고 떠나라’고.

진짜 이름을 잊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떠나보지도 못한 사람이 돌아올 걱정을 먼저 하는가.

우리의 주인공도 본명인 ‘치히로’일 때보다 ‘센’일 때가 훨씬 더 낫다. 징징대던 겁쟁이 소녀 치히로는 온천장에서의 모험을 통해 씩씩한 센으로 다시 태어난다.

센이 본명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보다 더 잘한 일은 남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것이다. 오물신의 몸에서 고철 쓰레기더미를 뽑아내 강의 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고, 죽어가는 하쿠를 살리기 위해 돌아오지 않는 기차를 탔다. 사랑하는 하쿠를 남겨두고 모험의 세계를 떠날 때도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지킬 줄 알았던 센은 터널을 지나 다시 치히로로 돌아왔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치히로가 아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달라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름이 부여하는 정체성에서 떠나는 것이 모험이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거울나라 속에서 이름이 쓸모가 없었던 것처럼, ‘오디세이아’에서 귀향하던 오디세우스가 이름을 속여 외눈박이 거인을 물리쳤듯 모험의 세계에서 ‘진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하는 건 오히려 이런 경우다. 영화사상 제이슨 본만큼 ‘내가 누구예요?’를 물으며 제 이름 찾아 헤매는 주인공도 없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 구조됐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은 1편인 ‘본 아이덴티티’(DVD·유니버설)에서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암살요원으로 이름이 ‘제이슨 본’이라는 걸 알아내고, 한 단계 전진해 2편인 ‘본 슈프리머시’(〃)에선 본명이 ‘데이비드 웹’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하지만 본명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다지 영광스럽지 않다. 반복되는 악몽의 정체를 좇아 본이 알아낸 사실은 암살요원인 자신의 첫 임무가 러시아의 개혁을 주도하던 의원 부부를 살해한 일이었으며 이들이 부부싸움 끝에 서로 죽인 것으로 위장해놓았다는 것이다.

본은 자신이 죽인 의원의 딸을 찾아가 사실을 털어놓고 부모의 불명예를 벗겨주려고 시도한다. 흉측한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그걸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본은 비로소 자신의 본명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이고 내 이름이 무엇인지는 그럴 때 외면하지 않고 똑똑히 기억해둬야 하는 것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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