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성숙진]韓流스타의 생동감에서 희망을 본다

  • 입력 2005년 1월 10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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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심리 신체 물질 시간 공간 면에서 자신의 영역을 갖는다. 각 사회는 어떤 관계 맥락에서 어느 정도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지를 규율하는 영역규칙(space rule)을 갖는데 사회마다 개인 간 영역의 융합 또는 이탈 정도에 차이가 있다.

거칠게 일반화해 본다면, 한국인들은 서로 간에 물리는 융합 성향이 있고 일본인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이탈 성향을 갖는다. 신혼부부도 침구를 따로 사용하는 것, 원색적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 10년 된 지우끼리도 식사 후 자신의 몫만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 늘 예의바르고 따라서 별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도 없는 것 등이 깊게 물리지 않는 일본인들의 이탈 성향적 영역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쉽게 융합을 잘하는 한국인들은 가족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쉽게 얽히고설킨다. 잘해 주고 싶은 것, 기대하고 바라는 것도 많고 그래서 실망 미움 섭섭함이 많다. 여전히 서로 밥값 내겠다고 싸우고, 원치 않는 참견 조언도 많고, 공사 구별이 모호한 경우도 많고, 불만 섭섭함 같은 감정도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너무 물고 물리는 관계망 속에서 피곤함과 부담도 많고 개인의 자율성, 개성을 묻어 버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상황이 좀 바뀌는 것도 같다. 전후 급속한 경제성장 단계에서 일본은 실업이 거의 없는 완전고용 속에서 평생직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개별적으로 크게 얽히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제공되는 안정된 관계망이 존재했던 셈이다. 그러나 완전고용, 평생직장 같은 것이 급격히 무너지는 세계화 질서 속에서 원래 서로 간 깊이 얽히지 않는 영역규칙을 갖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탈이 더 심화되는 듯하다. 이는 일본 젊은이들 가운데 방 안에만 틀어박혀 몇 년씩 밖으로 나오질 않는 ‘히게고무리’ 현상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에서도 일부 증명된다.

반대로 한국은 그동안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벗어나 개별적 자율성과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여전히 관계망 안에서 얽히고설키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점차 나타나고 있다. 그런 맥락 속에서 개별적 개성과 매력이 뚜렷하면서도 강한 심리적 결속력을 가진 안정된 관계망 안에 있는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생기 있고 편안하고 밝고 서글서글한 표정의 ‘꽃미남’ 배우들이 출현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배용준 씨 등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남자 배우들이 아무리 미남이라 해도 인간미나 다정다감함이 결여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라면 그렇게 일본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간에 얽히는 장면이 흔한 한국 드라마 속에서, 인간미가 흠뻑 느껴지는 한국 남자 배우들을 보면서 일본 여성들이 생동감과 삶의 희망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너무 얽혀서 인간관계가 피곤하다는 우리 사회, 그러나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방출해 내는 그 뜨거운 에너지가 파당적 싸움이나 개인의 개성을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돕고 보살피고 창의적 아이디어도 끝없이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면,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화 질서 속에서 뜻밖에 우리 사회를 지탱해 줄 큰 자산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숙진 한신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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