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화단에 모란이 피었나요? 꽃이 피면 꼭 한번씩 덕수궁에 가보거든요.”
석조전 동관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걷다보면 이제는 겨우 흔적만 남은 작은 모란 화단을 만날 수 있다. 전화를 받은 후 부랴부랴 화단으로 달려가 모란의 화려한 자태를 바라보노라면 한편으로는 각박한 일상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년 동안 모란이 피기를 기다려온 중년 여인의 ‘그리움’이 직접 가슴에 와 닿는 듯한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덕수궁에서 보내고 있다.
한때 덕수궁은 해마다 봄이 되면 모란을 보기 위해, 또는 그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진풍경을 그려냈다. 얼마 전 뵈었던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회고에 따르면, 1960년대 말부터 이어진 모란 풍경 현장 스케치는 70년대 김인승 박득순 손일봉 박광진 등 이름난 구상화가들에서 정점을 이뤄 8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우리나라 화가들에게 덕수궁은 언제라도 캔버스와 물감과 붓을 자연스럽게 꺼내 들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이 1973년 덕수궁으로 옮겨지면서, 그전까지 경복궁에서 치러지던 국전이 해마다 봄 가을 덕수궁에서 열렸다. 화가로 입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경쟁력 있는 등용문이었던 ‘국전’이 열리면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뿐만 아니라 입상작을 보려는 일반인과 미래의 화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인파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길게 늘어섰다. 70, 80년대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하지 않았던 때 덕수궁은 교과서에 실린 작은 도판으로밖에 볼 수 없던 모네, 마네, 피사로의 인상파 그림들과 밀레의 목가적 풍경화, 로댕의 조각, 피카소의 그림 등을 볼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장소였다.
미술을 전공했어도 작가가 아닌 미술관 행정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80년대 덕수궁에서 그림 그리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화가로서의 꿈은 사라져 버렸지만 덕수궁과 함께해 온 여러 가지 추억을 나누면서 지낼 수 있으니 복 받은 사람이랄까!
○최은주 관장(42)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여성 학예연구사 1호로 미술관 일을 시작해 1999년부터 덕수궁 분관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고야 판화전(2000년),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2003년), 고암 이응로전(2004년) 등 여러 전시들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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