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隨何)가 그저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마침내 알아들은 한왕 유방이 그렇게 말하고는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경의 사행(使行)길에 과인이 특히 뒷받침해줄 일은 없겠는가?”
그 말에 수하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이나 또박 또박 대답했다.
“먼저 관원 스무 명을 저에게 딸려[이십인구] 대왕과 우리 대한(大漢)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여 주십시오. 복색과 기치를 정연히 하고 폐백도 제대로 갖춰주셔야 합니다.”
사신에 딸린 관원이 스물이라면 다시 그들을 따르며 호위와 물자 운송을 맡을 이졸(吏卒)이 또 그 몇 배는 있어야 했다. 그들이 사자의 위엄을 드러내는 기치와 화려한 복색으로 찾아가면 도둑 떼의 우두머리에서 몸을 일으켜 왕이 된 경포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었다. 한왕이 그 생각으로 빙그레 웃으며 받았다.
“알겠다. 키 크고 잘 생긴 관원 스물과 날랜 보기(步騎) 백 명을 딸려 주겠다. 또 진평에게 일러둘 터이니 그들이 앞세울 기치와 걸칠 복색은 경이 직접 고르라. 그밖에 과인이 더 해줄 일은 없는가?”
“구강(九江)으로 떠날 날은 신이 결정하게 해주십시오. 신이 언제 구강왕 경포를 만나게 되는가가 일의 성패를 가름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도 한왕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인도 당장에는 경이 경포를 만나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도록 하라.”
그렇게 말하면서 역시 수하의 뜻을 따라주었다.
뜻대로 될지 아니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수하가 나서서 가슴을 짓누르던 걱정거리를 맡고 나서니 한왕의 마음은 한결 밝아졌다. 아침도 거르고 잠자리에 들어 간밤 내 말위에서 지낸 피로를 씻었다. 그런데 한왕이 한낮이 되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다시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선보(單父)까지 쫓겨 갔던 관영과 조참이 간밤 수수를 건너 서쪽으로 가다가 대왕이 이곳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리로 오고 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두 장군이 수습한 우리 군사도 그럭저럭 1만은 넘어선다고 합니다.”
진평으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들은 한왕은 펄쩍 뛰듯 기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떤 관영이고 어떤 조참이냐? 5년 전 과인과 함께 고향 패현을 떠난 이래 창칼의 수풀을 헤치고 화살 비를 맞으면서도 끄덕 없이 견뎌낸 이들이었다. 비록 예기가 꺾여 일시 적에게 쫓기게는 되었으나 반드시 살아서 과인을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먼저 우현의 진채에 이른 것은 한왕(韓王) 신(信)의 패군 천여 명이었다. 여지없이 무너져 쫓기면서도 자신을 저버리지 않고 거기까지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워 한왕 유방은 신의 손을 잡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어 관영과 조참이 이끈 일만 군사가 우현에 이르렀다. 죽을 구덩이를 빠져나온 안도였을까, 한왕은 그들을 잡고 다시 한번 목메어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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