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처럼 노조에 채용 인원을 할당해 주는 방식 외에 노조 간부가 전화나 면담 등을 통해 입사지원서를 낸 특정인을 지목해 회사 측에 채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중견 기업의 인사노무팀 관계자는 “노조와의 ‘채용 거래’는 회사에서 서너 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이뤄진다”며 “우리는 매년 2, 3명의 신입사원을 노조 간부가 원하는 사람으로 뽑는 데 동종 업계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노조의 경영 간섭은 회사의 경영상 주요 결정에 대해서도 이뤄진다.
자동차 회사는 특정 차종의 수요가 증가할 경우 수요가 적은 다른 생산라인의 근로자들을 전환 배치해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하는데 노조의 동의 없이는 이런 조치가 불가능하다.
또 기업이 새로운 설비를 들여와도 이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선 노조와의 합의가 절대적이다. 한 라인 또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 생산수(UPH·시간당 생산량)가 노사협상 대상이기 때문.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좋은 기계를 사와도 노조가 고용안정과 산업공동화 방지를 요구하며 UPH를 높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측은 이 때문에 UPH 노사협의에 참여하는 노조 대의원들을 평상시에도 아예 근무에서 빼주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자판기 또는 매점 등의 운영권이 대부분 노조에 있어 노조가 이를 운영하거나 운영권을 제3자에게 위탁하는 과정에서 거래업체와 비리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또 회사가 명절 등에 직원용 선물 제조업체나 건강검진 업체를 선정할 때 노조가 사측에 특정 업체를 요구하는 일도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수년 전 모 자동차회사의 노조 간부가 건강검진을 하게 해 준 병원에서 리베이트를 받았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노조의 도덕적 타락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 경영계는 “노조가 이권사업에서 최대한 손을 떼고 감사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조 내부에서 자체 회계감사가 이뤄지긴 하지만 같은 노조원이 하고 있어 투명한 감시가 이뤄지기 힘든 만큼 조합비가 일정액을 넘는 대기업 노조의 경우 제3의 외부기관이나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이권이 걸린 사업은 회사가 투명하게 공개 입찰 절차를 밟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
한 노동전문가는 “일부 노조 간부의 도덕적 타락은 회사가 노조를 회유 포섭하기 위해 노조 간부들에게 암암리에 제공해 온 각종 부도덕한 특혜성 미끼에서 기인한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 쪽에서는 “기아차 광주공장 사건처럼 돈을 주고받는 행태는 극히 일부 사업장에 불과한 일”이라며 “이 사건으로 노동운동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많은 노조에서는 조합원들이 여러 계파로 나눠져 있어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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