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8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17일 18시 41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신(臣)들은 옛 진나라의 백성들이라, 대왕께서 신들을 장수로 세워도 군사들이 신들을 믿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가까이 두고 부리는 장수 중에서 말을 잘 타는 이를 골라 기장(騎將)을 세우시면 신들은 그분을 도와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한왕은 관영을 세워 기장으로 삼았다. 관영은 기사(騎士)로 오래 싸워 온 경험도 없고 나이도 이필(李必)이나 낙갑(駱甲)보다 적었지만, 한왕 곁에 있는 장수 중에서는 가장 말을 잘 탔고 또 치열한 전투를 치른 적이 많았다.

관영이 중대부(中大夫)로서 대장이 되고 이필과 낙갑이 좌우(左右) 교위(校尉)로서 부장(副將)이 되어 기장의 진용은 대략 갖추어졌다. 한왕이 그들에게 낭중 기병 5000을 딸려 주자 그때부터 한나라도 따로 기마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 기마대가 새로 항오(行伍)를 짓고 진채를 세울 무렵 동쪽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항왕이 보낸 기마대가 동쪽에서 달려오고 있습니다. 어제 곡우를 지났다 하니 그대로 두면 내일은 형양을 덮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관영이 투구 끈을 여미며 나섰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들을 크게 무찔러 다시는 형양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한왕도 방금 꾸민 기마대의 전투력을 한번 가늠해 보고 싶었다. 입으로 걱정은 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출격을 허락했다.

5000 기병을 이끌고 형양을 떠난 관영은 동으로 50리쯤 되는 벌판에서 초나라의 기마대와 마주쳤다. 기장인 관영이 스스로 선봉이 되어 매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자 한군에는 기마대가 없는 줄 알고 마음 놓고 달려오던 초나라 기마대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곱절에 가까운 머릿수로도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 보지 못하고 그대로 뭉그러졌다.

관영은 그런 초나라 기병대에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쳐 철저하게 들부수었다. 이에 패왕이 믿고 먼저 보낸 초나라 기마대는 본대(本隊)의 전군(前軍)이 이르기도 전에 풍비박산이 나서 흩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예기가 꺾인 초나라 군사는 본대 전군이 이른 뒤에도 형양 서쪽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형양 동쪽에 멈추어 서서 패왕의 중군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한왕은 하수에서 형양까지의 용도(甬道)공사를 끝내 오창에 쌓인 곡식을 고스란히 형양성의 군량으로 삼을 수 있었다.

소문과 달리 패왕이 이끈 초나라 중군의 도착은 더뎠다. 한번 쓴맛을 본 터라 그런지, 패왕은 팽성 방비를 위해 그답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했다. 또 제나라 정벌 때 겪은 어려움 탓인지 이번에는 병참(兵站)과 치중(輜重)에도 힘을 쏟았다. 그 바람에 처음에 대군을 내기로 기한한 닷새는 열흘로, 열흘은 스무날로 늘어졌다.

패왕이 형양에 이르리라고 미리 헤아려 온 날이 한참 지나도 패왕이 오지 않자 한왕은 그 까닭이 궁금해졌다. 가만히 사람을 서초에 풀어 알아보게 했다. 오래잖아 팽성까지 다녀온 간세(奸細)가 패왕이 늦어지는 까닭을 자세히 알려왔다.

모처럼의 전의(戰意)를 불태우며 패왕 항우를 기다리던 한왕 유방은 그 간세가 보내온 전갈을 듣자 슬며시 마음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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