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유학파, 그것도 미국 유학파들이다. 학부는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 출신이 많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외국 유학을 하고 돌아와 서구적이고 패션감각을 지닌 엘리트 작가들”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30, 40대 작가들은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과 주요 이슈들을 빠르게 받아들인 세계화와 장르파괴의 1세대다. 한국 영 아티스트들의 창작활동을 주제별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미술은 생활이다. 한국적 팝 아트를 연 작가들
1980년대 민중미술과 미니멀리즘 미술로 양분됐던 추상화단의 틈바구니에서 부상한 영 아티스트들은 ‘어려운 미술’을 거부한다. 미국의 팝아트 화가 앤디워홀처럼, 이들은 일상의 소재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창작함으로써 미술은 생활임을 강조한다. 통상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들을 이용하는 미술을 의미하는 ‘팝 아트’는 한국 영 아티스트들의 주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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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대표되는 대중적 이미지를 작품에 적극 활용해 ‘아토마우스’라는 상징을 만들어 낸 이동기 씨, 만화책 화투패 탱화 등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팝 아트적 화면에 자화상을 그려 넣는 식으로 현대인의 정체성을 묻는 서은애 씨, 전통 화조화(花鳥畵)를 연상케 하는 구도에 팝 아트적 색채를 가미해 이질적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홍지연 씨 등이 꼽힌다.
○재료의 무한대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영 아티스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에겐 캔버스나 붓만이 작업 도구의 전부가 아니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소재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머리카락으로 작업하는 함연주 씨나 주사기에 물감을 넣고 캔버스에 물감을 주사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윤종석 씨, 낡은 청바지 조각으로 자신의 고향인 부산의 풍경을 재구성하는 최소영 씨, 비누로 이불과 관을 만들어 소멸의 의미를 묻는 김진란 씨, ‘반짝이’라는 플라스틱 재료로 불상(佛像) 등 거대 사물을 만드는 노상균 씨, 구리선으로 아름다운 꽃을 만드는 정광호 씨, 실과 침 핀으로 드로잉을 하는 권혁 씨 등이 대표적이다.
○비디오, 테크놀로지
비디오를 이용해 감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영상작업은 회화를 위협할 정도로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부상했다. 각종 기계작업은 물론 컴퓨터와 디지털, 영상 문화를 재빠르게 흡수한 영 아티스트들은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다양한 영상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일상의 다양한 모습으로 포착해 보여주는 김영진 씨의 비디오 작업, 실재와 영상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혼동과 경계에 관심을 갖고 작업해 오고 있는 김창겸 씨의 슬라이드 프로젝터와 비디오 작업, 옥외간판에 주로 사용되는 라이트 박스를 촬영한 영상을 통해 실체와 환영의 의미를 묻는 구자영 씨의 작업 등이 꼽힌다. 또 물고기 화석 이미지를 이용해 움직이는 모형을 만드는 최우람 씨, 공상과학적 상상력으로 테크노피아 시대의 꿈 환상 불안을 보여주는 이한수 씨, 움직이는 조각을 이용해 사상이나 문명을 비판하는 안수진 씨 등은 섬세하고 기계적인 테크놀로지 기법을 미술에 도입한 선구적 영 아티스트들이다.
○장르해체, 퓨전, 패러디
재료와 형식을 뛰어넘는 영 아티스트들의 작업방식은 한 마디로 해체와 퓨전이다. 이들에겐 정형화된 장르나 고정적 기법이 없다. 예를 들어, 사진 위에 비닐 그림을 합성해 사진과 회화를 섞는 작업을 선보이는 배준성 씨는 전통적 회화기법을 파괴하고 해체해 동서양 미술사에 나타난 대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패러디하는 대표적 작가다. 또 현대인들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드로잉 영상작업으로 보여주는 문경원 씨, 석고상을 패러디해 여성미의 표준화를 꼬집는 재미교포 작가 데비한 씨도 꼽힌다.
영 아티스트들의 장르 해체가 두드러진 분야는 동양화. 이들은 전통적 재료인 지필묵(紙筆墨)을 뛰어넘어 장르와 양식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작업을 펼친다. 병원의 X선 사진을 라이트 박스에 오려 붙이거나 붕대를 묶는 의료용 스테이플로 동양화적 화면을 구현하는 한기창 씨, 먹과 서양화의 재료를 함께 사용해 극도의 절제된 형식 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이기영 씨, 쇳가루로 산수화를 그리는 김종구 씨 등이 대표적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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