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때까지 형양성이 평온한 것이 반드시 그와 같은 한신의 빈틈없는 대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패왕 항우가 때 아닌 신중함으로 머뭇거려준 덕분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패왕은 어렵게 마음을 굳히고 팽성을 떠났으나 며칠 안돼 등 뒤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나라가 한왕 유방이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무슨 일을 낼 것 같았다. 도읍인 임치(臨淄)를 되찾고 삼제(三齊)를 아우른 전횡(田橫)이 팽성이 비었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에 패왕은 다시 항백에게 군사 2만을 떼어주며 팽성으로 돌려보내 항장(項壯)과 함께 팽성을 굳게 지키도록 했다.
그런데 다시 하수(河水=황하)쪽에서 팽월(彭越)의 무리가 움직인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원래 팽월은 속한 데가 없었으나[무소속] 몇 달 전 3만 군사를 이끌고 한왕 유방 밑으로 들었다는 말을 듣자 패왕은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종리매에게 또다시 3만 군사를 떼어주며 팽월을 멀리 쫓아버리게 했다.
이래저래 5만 군사가 떨어져 나가자 패왕에게 남은 군사는 7만밖에 되지 않아 이번에는 형양을 들이칠 군사가 모자랐다. 한왕은 그 사이 10만 군사를 긁어모아 형양성 안팎에 펼쳐놓고 굳게 지킨다는 소문이었다. 거기다가 오창까지 용도를 쌓아 그곳의 곡식을 먹고, 등 뒤로는 성고성이 받쳐주고 있으며, 광무산에도 맹장 번쾌가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길목을 막고 있다는 말까지 들렸다.
바로 한 달 전에 3만 군사로 56만 한군을 쥐 잡듯 하였으나, 그 기적 같은 분발에 엄청난 기력을 소모한 탓인지 거기서 패왕은 갑자기 패기와 자신을 잃었다. 속도와 집중으로 무섭게 치고 드는 대신 때 아닌 신중함으로 대량(大梁)땅에 군사를 멈추었다.
“먼저 지리(地利)를 차지하고 굳게 지키는 적을 에워싸기 위해서는 적보다 다섯 곱절이 많은 군사가 필요하다 했다. 그와 같은 병가(兵家)의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나, 또한 넉넉지 못한 군사로 서둘러 중지(重地)에 들 까닭은 없다.”
패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구강왕(九江王) 경포(경布)에게 거듭 사람을 보내 재촉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대군을 내어 과인을 돕도록 하라.”
그러나 패왕의 성품을 잘 아는 경포는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지난번 제나라 정벌 때도 병을 핑계로 군사를 내지 않고 팽성이 떨어질 때도 구경만 하고 있었던 자신을 패왕이 용서할 것 같지 않았다.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날만 끌었다.
한신으로부터 그와 같은 패왕의 형세를 들은 한왕은 곧 막빈(幕賓)과 장수들을 모두 자신의 처소로 불러 모으게 했다.
글 이문열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