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92>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27일 18시 3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위왕(魏王)이 워낙 매몰차게 돌아서 역이기도 더 말을 붙여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위왕을 달래기는커녕 무안만 당하고 쫓겨난 역이기는 하룻밤을 안읍(安邑)에서 묵은 뒤 형양(滎陽)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역이기의 그 발길이 반드시 헛된 것은 아니었다. 사신이란 핑계로 들고나면서 위나라의 속사정을 세밀하게 살피고 돌아온 까닭이었다.

위왕 표가 한 말을 역이기가 전하자 한왕 유방은 한동안 쓴 입맛을 다시다가 불쑥 물었다.

“위표는 누구를 대장으로 삼고 있었소?”

역이기가 알아온 대로 대답했다.

“백직(柏直)입니다.”

“백직이라면 아직 입에서 젖비린내도 가시지 못한 놈이다. 어찌 우리 대장군 한신을 당해내겠는가!”

백직을 잘 알고 있는 한왕은 그렇게 받고 이어서 물었다.

“기장(騎將)은 누구였소?”

“풍경(馮敬)이란 장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옛 진나라 장수 풍무택(馮無擇)의 아들이다. 똑똑하지만 우리 기장 관영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한왕이 다시 한번 안심한 듯 그렇게 말해놓고 또 물었다.

“그럼 보졸(步卒)을 거느리는 장수는 누구였소?”

“항타(項타)였습니다.”

“그도 과인이 잘 아오. 초나라 장수로서 위나라를 구하러 갔다가 위구(魏咎)때부터 위나라의 장수 노릇을 해 왔으나, 우리 조참을 당해낼 만한 그릇이 못되오. 선생의 말을 듣고 보니 과인이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구려!”

그때 곁에 있던 한신이 아무래도 미덥지 않다는 듯 역이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위나라가 주숙(周叔)을 대장으로 삼지 않았습니까?”

“백직입니다. 틀림없이 백직이 위나라 대장군이라 들었소!”

역이기가 한 번 더 그렇게 확인해 주자 한신이 가만히 웃으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덜 떨어진 더벅머리 놈[수자]!”

그게 위나라 대장인 백직을 두고 하는 소린지, 그를 대장으로 삼은 위왕 표를 두고 하는 소린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한왕이 다시 여럿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위표가 권하는 술은 받지 않고 벌주(罰酒)를 마시려는 듯하오. 이제 이 위나라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한신이 나섰다.

“신에게 쓸 만한 장수 둘과 군사 3만만 주신다면 보름 안으로 위표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대왕께서는 남은 대군을 거느리고 형양을 굳게 지키기만 하십시오.”

“쓸 만한 장수 둘이라면 누구누구가 좋겠소?”

“방금 대왕께서 말씀하신 관영과 조참이면 됩니다. 관영은 기마대를 이끌고 동쪽을 휩쓸어 초나라의 이목을 어지럽히고 조참은 신과 더불어 위표를 급습할 것입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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