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9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51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앵(앵)과 부(부)는 모두 술이나 물을 담는 통이다. 입구가 좁고 배가 불룩한데 부가 앵보다 조금 작다. 그런데 나무로 만들었으니 강물에 띄우고 끌어안거나 몸에 묶으면 물이 깊은 곳도 배 없이 건널 수가 있다.

군사들이 모두 나무로 된 앵과 부를 구해오자 한신은 그걸 안거나 몸에 묶고 밤중에 가만히 하수를 건너게 했다. 8월 하순 가을이라 물이 차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견딜 만했다. 군량과 다른 물자는 여러 개의 나무 앵과 부로 엮은 뗏목에 실어 하수를 건너게 했다.

아무도 모르게 3만 군사로 하수를 건넌 한신은 곧바로 위나라의 도읍인 안읍(安邑)으로 찔러 들어갔다. 포판에다 대군을 벌여놓고 있던 위왕 표는 한나라 대군이 홀연 안읍으로 몰려든다는 전갈을 받자 깜짝 놀랐다. 대군에게 얼른 진채를 뽑아 안읍으로 향하게 하는 한편 장군 손속(孫M)을 먼저 보내 도중에서 한군을 막게 하였다.

급히 가려 뽑은 위병(魏兵) 2만을 이끌고 달려간 손속이 한군과 만난 것은 동장(東張) 부근이었다. 위왕의 엄명에 쫓겨 얼결에 달려오기는 했으나 손속은 원래가 한신이나 조참의 적수가 못되었다. 거기다가 군사까지 머릿수가 적으니 싸움이 될 리 없었다. 한번 싸움으로 바위를 친 계란 꼴이 났다. 손속은 조참의 한칼에 목이 달아나고 그 군사들은 거의가 한군에 죽거나 사로잡혀 버렸다.

안읍에 이르자 이번에는 도읍을 지키던 위나라 장수 왕양(王襄)이 성안에서 잡병 3만을 긁어모아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성안에서 지키면서 위왕의 대군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면 될 일을 뭘 잘못 알고 달려 나온 듯했다. 조참의 군사들이 내달아 왕양이 성안으로 돌아갈 길을 끊고, 다시 한신의 본대가 정신없이 그 앞을 몰아치니 왕양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한군에 사로잡혀 버렸다.

이윽고 위왕 표가 7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안읍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도 한참 늦어 있었다. 잇따른 승리로 한군의 기세는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거기다가 한군은 하룻밤을 느긋이 쉬며 기다린 군사요, 위군(魏軍)은 밤낮을 급하게 달려와 지칠 대로 지친 군사였다.

“과인의 대군이 이르렀으니 한신은 어서 성을 나와 항복하고 목숨을 빌어라!”

위왕 표가 빼앗긴 제 도성 밖에서 성안에 대고 그렇게 소리치며 싸움을 걸었다. 그래도 군사들의 머릿수가 많은 것을 믿고 큰소리를 쳐 본 것이었으나, 싸움의 승패가 군사들의 머릿수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놈 위표야. 너야말로 어서 말에서 내려 네 죄를 빌고 포박을 받아라. 우리 대왕께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지 오래다.”

미리 그물을 치듯 빈틈없이 계책을 펼쳐놓고 기다리던 한신이 그렇게 소리치고 손짓을 하자 먼저 하늘을 거멓게 뒤덮은 화살비가 위군(魏軍)의 넋과 얼을 한꺼번에 빼고 흩어놓았다. 이어 동남 두 성문이 한꺼번에 열리며 두 갈래 한군이 달려 나오는데 한쪽은 조참이 이끄는 군사요, 다른 한쪽은 좌승상 한신이 직접 휘몰아 나오는 군사였다.

그래도 크고 작은 싸움을 수십 번이나 치른 위표였다. 기세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스스로 창을 휘둘러 마주쳐 나갔으나 장졸들이 따라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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