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아프겠지. 아주 많이.”(에드워드)
“여기보다 더 나은 곳도 없소.”(마을주민)
“기대하지 않아요.”(에드워드)
―영화 ‘빅 피쉬’에서
마을을 떠나는 에드워드와 그를 말리는 주민들의 대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DVD·컬럼비아)에서 고향을 떠난 에드워드가 처음 만난 곳은 신발 벗고 퍼질러 앉아 놀기로 작정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듯한 ‘유령마을’이다. 잔디가 융단처럼 깔려 있고 평화로운 이 마을 주민들은 맨발로 노래하고 춤추며 마냥 행복하다. 마을 입구에는 이들이 벗어던진 신발이 주렁주렁 걸린 줄이 드리워져 있다. 어여쁜 소녀 제니는 에드워드의 신발도 벗겨 줄 위에 던져 걸어놓는다.
그냥 머물러도 될 것을…. 하지만 에드워드는 “나는 어디에도 정착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서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만류하는 주민들을 뒤로 한 채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맨발로 숲을 가로지른다. 굳이 떠나야 한다면 신발을 끌어내려 신으면 될텐데, 에드워드는 왜 맨발로 갔을까.
신발을 버린 에드워드처럼, 신화나 옛날이야기에는 신발을 잃어버림으로써 모험을 시작하는 영웅들이 종종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산에 버려진 왕자 이아손은 나라를 되찾으려 돌아오다 한 할머니를 업고 강을 건너게 된다. 거센 물살에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이아손은 신발을 붙들려고 허우적댔지만, 업고 있던 할머니 때문에 포기하고 있는 힘을 다해 강을 건넌다. 맞은 편 강둑에 이르자 할머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할머니는 이아손이 모험의 관문을 넘는 과정에서 거듭나도록 돕기 위해 나타난 헤라 여신이었던 것이다. 이아손은 이후 몇 차례의 모험을 거듭한 뒤 잃어버렸던 왕위를 되찾는다.
때로 신발은 ‘내가 (혹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결정적 징표로도 쓰인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자신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게 된 것은 섬돌을 번쩍 들어올려 그 밑에 아버지가 감춰둔 신표인 가죽신과 칼을 발견하면서부터다. 파티에 왔다가 종적을 감춘 신데렐라를 왕자가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외짝 유리구두 덕분이었다.
신발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정체성, 혹은 그때까지 외부세계와 만나면서 성립된 외적 인격(페르소나) 같은 것이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랐던 사람은 신발을 통해 진짜 자신을 찾게 되기도 하고, 길을 떠나는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림으로써 그때까지 익숙해 진 존재를 벗어던지고 거듭 나는 모험을 시작한다.
신발을 벗고 서둘러 떠나도 안전한 건너편 강둑, 도착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매는 사람들이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맨발로 떠난 에드워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길에서 맞닥뜨린 모든 기회들을 받아들였다. 무슨 일을 겪든 그를 지탱해 준 힘은 ‘나는 이렇게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어릴 때 마녀의 유리알 눈에서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늑대인간과 싸우고 전쟁을 겪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이 상황을 돌파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세상을 두루 겪은 뒤 중년이 된 에드워드가 ‘유령마을’에 돌아왔을 때, 신발은 여전히 줄에 걸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맨발이었다. 하지만 한번도 떠날 준비를 해보지 않았던 그들은 쇠락한 마을에서 피폐해진 채 살고 있었다. 그들을 구원한 건 에드워드였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끝―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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