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11>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21일 18시 27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좋다. 여기서 하루를 쉬며 흩어진 군사를 모은 뒤 조나라로 돌아간다. 한군의 추격이 있다 해도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다면 그리 큰 군사는 못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연여 읍성(邑城) 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런데 몇 마장 가기도 전에 마치 조금 전 하열이 한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한나라 대군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열에게는 그들이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등지고 땅에서 갑자기 치솟은 듯했다.

“하열은 어디 가느냐? 대장군 한신이 여기서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이어 그런 호통소리가 들렸다. 하열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정말로 대장군 한신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때 다시 등 뒤 머지않은 곳에서도 함성이 일었다. 뒤따라오던 군사 하나가 하열에게 달려와 다급하게 알렸다.

“적의 추격이 여기까지 따라와 붙었습니다. 앞뒤가 다 적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하열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앞뒤가 모두 적에게 둘러싸였으니 움치고 뛰려 해야 뛸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항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모두 죽기를 두려워말고 나아가라. 피로서 길을 열어 부모 형제가 기다리는 조나라로 돌아가자!”

하열이 칼을 뽑아들고 발악하듯 외치며 말을 박차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장졸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화톳불에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자취 없이 스러지고, 하열도 이름 없는 한나라 장수의 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오래잖아 조참과 장이가 이끄는 군사들이 항복하는 나머지 대병(代兵)을 거두어 한신의 중군과 합쳤다. 한신은 약속대로 하열을 장이에게 맡겼다.

장이의 사람됨이 원래 그리 모질지 않았으나, 진여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떠돌면서 키운 원한이 사람을 바꾸어 놓은 듯했다. 진여의 손발이 되어 자신을 해친 하열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 목을 베어 군문(軍門)에 걸고, 항복한 대나라 군사들 중에도 조나라에서 진여를 따르다 온 군사들은 모두 죽였다. 그 바람에 연여 성밖에는 때 아닌 피바람이 일었다.

연여에서 하열을 잡아 죽여 대나라를 온전히 평정한 한신은 평성으로 돌아가 며칠 쉬었다.

그때 갑자기 형양에서 한왕의 사자가 달려왔다.

<초군(초군)의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항왕은 종리매에게 대군을 주어 광무산(광무산)을 치게 하고 ,자신은 용저와 더불어 길을 돌아 오창(오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대장군은 급히 정병을 이끌고 돌아와 형양을 지키라.>

사자로부터 그와 같은 한왕의 전갈을 받은 한신은 가슴이 답답해왔다. 이제 막 위(魏)와 대(代)를 평정하고 조나라로 내려가려 하는데 갑자기 발목이 잡힌 느낌이었다. 한참이나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사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제나라의 전횡과 구강왕 경포는 어찌 되었다고 합디까?”

“범증이 항왕을 달래 제나라와의 화호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초나라는 동북쪽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항왕은 구강왕(九江王) 경포에게 잇따라 사자를 보내 함께 출병하기를 권하고 있는데, 경포도 차츰 마음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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