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육상연습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바람에 뇌 활동에 이상 증세를 앓고 있는 다쿠미(나카무라 시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옆에 앉은 미오(다케우치 유코)란 여학생에게 마음이 끌리지만 워낙 내성적 성격 탓에 말 한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한 채 졸업하고 만다. 각자 대학에 입학한 후 어느 날 어찌 어찌 용기를 내 다쿠미는 미오를 만나고 둘은 급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곧 결혼을 한 둘은 아들 유지(다케이 쇼)를 낳지만 그 바람에 몸이 약해진 미오는 몇 년 후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녀가 죽은 지 1년 후, 일상이 엉망이 된 다쿠미와 유우지 앞에 기적처럼 미오가 살아 돌아온다.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다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죽은 아내가 살아서 돌아오는 데다(그것도 그녀가 죽기 전 약속한 대로 비가 내리는 계절에) 거짓말과도 같은 6주간의 행복한 동거 끝에 그녀가 다시 떠나간다는 얘기로 이어지는 이 영화의 내용은 그냥 한 권의 아이들 순정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쩜 이렇게 비현실적인 내용일 수 있을까. 어쩜 이렇게 영화의 리얼리티라곤 눈곱 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일까. 일본 관객들은 지금이 도대체 어느 때라고 이렇게 꿈만 먹고 살고 있을까.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신경선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
조금 과도하게 얘기하자면 이것 역시 광의의 의미로 한류 바람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영화 가운데 ‘편지’니 ‘고스트 맘마’니 하는, 이제는 기억하기 힘든 작품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TV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자신의 마음을 채워 줄 얘깃거리라면 남편과 자식을 모두 내팽개치고 꽃미남에 열광하는 ‘아줌마’ 관객들을 겨냥해 한탕, 극장 수입이나 확실히 챙기자는 목적의식으로 만들어진 영화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유의 계보에 살짝 발을 얹고 있는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영화의 관객층보다 조금 더 낮은 연령대, 곧 로 틴 세대를 위한 할리 퀸 소설과도 같은 영화다. 재밌는 것은 일본에서는, 이른바 ‘오바리언’(아줌마를 뜻하는 ‘오바상’이란 단어에 외계인을 뜻하는 ‘에일리언’을 붙여 합성한 신조어로 용사마 등에 열광하는 중년여성들을 비꼬는 의미가 담겨 있다)을 의식해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0대 중후반의 여학생들을 타깃으로 이들 영화가 줄기차게 수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 사회문화적 경향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 특히 일본의 중년여성들은 1970, 80년대 일본 자본주의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상실된 그 무엇을 찾아 지금 한창 방황 중이다.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청춘을 희생시킨 사회를 향해 뭔가를 보상 받고자 하는 무언의 압력이 어쩌면 한류라는 바람으로 치환돼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일본의 중년남성들이 자신의 그런 부인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그녀들의 보상 요구가 일면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청소년들이 이런 유의 영화에 열렬히 반응하고 있다. 세대와 국적은 달라도 뭔가에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청소년과 일본의 오바리언 사이에는 일맥상통하는 대목이 있다. 공부와 취업, 끊임없이 성공과 생존을 요구하는 사회와 가정의 분위기야말로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비현실적 내용의 동화 같은 영화를 보러 가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보며 열광하고 눈물짓는 것은 향후 약이 될까, 독이 될까.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처럼 일본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대박 흥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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