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이야기]“怒대통령 무서워” 살얼음 국무회의

  • 입력 2005년 3월 30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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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써 준 것을 그대로 들고 와서 읽는 게 장관이 할 일입니까!”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A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혼쭐이 났다. 최근 해당 부처의 업무와 관련해 벌어진 부정사건의 방지대책을 장황하게 보고한 데 대한 질책이었다. 여기에는 A 장관이 부처 공무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뜻도 담겨 있었다.

노 대통령은 “대책 내용을 보면 해당 부처에서 알아서 할 일들뿐인데 이런 사안을 뭐하러 국무회의에 갖고 왔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부처에 협조를 구할 사안이 아니고, 해당 부처에서 잘 해보겠다는 식의 보고라면 굳이 전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에서 꺼내놓지 말라는 얘기였다.

한 참석자는 “노 대통령이 질책하는 동안 회의장이 얼음장 같았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무안할 정도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B 장관도 질책까지는 아니지만 노 대통령으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이날 보고한 ‘해외 근무 인력의 정보네트워크 구축방안’ 보고서를 대외비로 분류한 것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이런 내용이 무슨 비밀이냐. 오히려 서로가 공유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을 대놓고 혼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부처 이기주의를 내세우거나 회의 진행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할 때에는 가차 없이 지적한다는 것. ‘얼굴을 붉히더라도 따질 것은 따진다’는 노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이 국무회의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

이 때문에 매월 마지막 주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는 장관들에게 ‘공포의 회의’가 되고 있다. 반면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는 분위기가 부드럽다고 한다. 이 총리도 노 대통령 못지않게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아직 50대 초반인 데다 동료 정치인들도 여러 명 입각해 있어 허리를 낮추는 편이라는 것.

다만 이달 초부터 진행 중인 각 부처의 업무보고 때만은 역할이 바뀌어 노 대통령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장관들의 기(氣)를 살려준 반면 이 총리가 대신 쓴소리를 하는 ‘악역’을 맡았다는 후문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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