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교황]한홍순/각별한 ‘코리아사랑’ 절절

  • 입력 2005년 4월 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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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처음 뵌 것은 1984년 5월이었다. 한국 방문 첫발을 내디디시던 그분을 김포공항으로 영접 나가서였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말을 원용해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닙니까”라고 한국어로 인사 말씀을 하신 그분을 뵙는 순간, ‘아, 이분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해에 교황님은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필자를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으로 임명해 주셨다. 그 후 지금까지 해마다 한두 차례 뵐 때마다 한국어로 인사를 드리면, 이순(耳順)을 넘겨 배운 한국어로 화답하곤 하셨다. 회의를 주재하실 때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실 때나 교황님은 한결같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농담도 건네며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셨다.

언젠가 교황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기회에 필자가 일하고 있는 대학에 폴란드어과가 개설돼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교황님께서 크게 반가워하면서 이것저것 자세하게 물으시던 일이 기억난다. 자기 모국의 언어와 사회 문화에 대해 한국의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이 영원한 폴란드인이기도 한 교황님에게는 매우 흡족한 일이었으리라.

교황님은 유난히 한국과 한국민을 사랑한 분이셨다. 그것은 어쩌면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이 천주교회를 세워 혹독한 박해를 이겨내며 커다란 성장을 이룩한 일이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백성도 한국민밖에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교황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남과 북의 한민족이 서로 화해해 일치를 이루도록 늘 기도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근년에 와서 해가 갈수록 쇠잔해지시는 교황님을 뵙는 것이 무척 안쓰럽기도 했지만, 노쇠한 몸으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꿋꿋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다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했다.

지난해 11월 말 아내와 함께 뵈었을 때 자상하게 대해 주시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대할 수 없게 된 것은 커다란 슬픔이지만, 하느님의 사람이신 교황님이 이제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 기쁨을 맛보고 계시리라는 생각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카롤 보이티와 교황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분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한홍순 한국외국어대 교수·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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