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는 이날 한국 가톨릭 200주년 기념식 및 김대건(金大建) 신부 등 순교자 103위에 대한 시성(諡聖) 시복(諡福)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것. 교황의 해외 순방국가로는 21번째였다. 그는 도착 성명 첫머리에서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 아닌가”라고 인사했고 마무리도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전 로마에 있던 장익(張益·현 춘천교구장) 주교에게서 주 3회 한국어를 배웠다. 또 한우근(韓佑劤) 전 서울대 교수의 ‘한국통사’ 영역본을 읽고 “혹독한 시련에도 민족의 정통성을 꿋꿋이 지켜온 한국의 역사가 모국 폴란드와 닮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은 첫 방한 때 40여만 명이 모인 부산 강연에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등 당시 정치 상황에서 볼 때 민감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방한 마지막 행사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젊은이와의 대화 시간에 ‘군사정권의 폭압성을 알리겠다’며 일부 젊은이가 들고 온 ‘최루탄 상자’를 흔쾌히 받은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교황은 그 뒤 1989년 10월 7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교황은 10월 8일 65만여 명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광장 성체대회 미사에서 남북 화해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교황은 그 후에도 한국에 큰 사건이나 재해가 있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고,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및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때는 위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교황은 북한 방문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0년 3월 로마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당시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방북을 권유하자 교황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교황청은 평양에 대주교를 파견하고 북한에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교황청이 방북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북한의 가톨릭교회 인정 △가톨릭 신부 입북 허용에 대해 북측이 소극적 태도를 보여 교황의 방북은 끝내 무산됐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